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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2.04 17:44 수정 : 2006.12.04 17:44

왜냐면

지난 설 명절 고향을 찾아 온 가족이 모여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을 무렵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서울 영등포역사 안에서 30대로 보이는 한 노숙인이 골판지 위에 싸늘한 시신으로 동사한 채 발견됐다는 뉴스가 있었다. 비참한 죽음에 이른 그분의 사연을 다 알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 노숙인이 배고픔과 추위에 눈을 감으면서 이 세상을 얼마나 원망하였을까?

현재 우리나라에는 약 6천명의 노숙인이 있으며, 그밖에도 일정한 주거지가 없어 역 근처 다방이나 피시방, 쪽방 등을 전전하는 이들의 수는 집계된 바조차 없다. 지난 9월30일 영등포역 안에서 2명의 노숙인이 방화셔터에 깔려 어이없이 숨졌다. 이처럼 각종 사건 사고로 전국의 노숙인과 부랑인이 한 해 약 400명 정도가 숨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흔히 노숙인 문제는 ‘해답 없는 선진국병’이라고 한다. 일본은 3만여명, 미국은 최대 300만명까지 보고되고 있다. 유형은 다르지만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선진 유럽에서도 ‘집시’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국내의 경우 전체 노숙인 수는 감소세라지만 불황이 깊어지면서 ‘지하철의 노숙인’은 갈수록 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20~30대 젊은층 여성, 심지어는 자녀까지 딸린 가족 노숙인도 눈에 띈다는 데 있다.

선진국과 견주어 생활고가 주범인 경우가 많은 우리나라 노숙인들의 위생과 의료, 의식주 등 복합적 환경은 너무나 열악하고 비참하다. 이들을 돕고자 애쓰는 일부 종교단체나 시민단체의 식사 제공이 이분들의 안타까운 생활을 벗어나게 할 수는 없다. 연말연시 장관이니 정치인이니 하는 사람들이 간혹 찾아와서 노숙인들에게 밥 퍼주고 모양 좋게 사진 찍고, 얼마간의 후원금을 내고 간다. 그러나 그것으로 노숙인 문제 해결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가 의문이다.

현재 정부는 인도적 지원이란 명목으로 보조금을 줘가며 금강산 관광을 장려하고 매년 쌀과 비료 등 막대한 양의 대북지원을 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새터민에게는 하나원에서의 일정한 적응교육과 수천만원대의 정착금까지 지급하고 있다. 그런데 같은 시간 다른 곳에서는 수천 명의 내국인이 배고픔과 추위에 떨며 고통 받고 길거리에서 죽어가고 있다. 지난달에는 처우에 불만을 품은 한 노숙인이 수용시설에 불을 질러 4명이 숨지고 3명이 다치는 사고도 있었다. 우리가 먼저 불우한 그들을 잘 배려하고 보살펴 줬다면 앞선 방화와 같은 불행한 참사는 막을 수 있었다. 또한 노숙인들의 병든 육체와 영혼을 치료하고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거듭나게 하는 게 우리 사회에도 이익이다.

실질적인 노숙인 구제는 노숙인들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여 실질적인 자활 의지를 키워주는 것이라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노숙인을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하고 이들에게 공공사업이나 마을 청소 등 일자리를 마련해 일정한 수입을 통한 희망적인 자립의 기회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

각 지자체에서는 노숙인을 기존에 운영되고 있는 쉼터에 분산 보호하여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하고, 숲 가꾸기, 산불감시, 하천정화 및 상수원 감시요원 등으로 활용하며, 근로능력이 떨어지는 노숙인에게 공공취로 사업이나 공원정비, 자전거관리소 관리, 지하철 무임승차 단속 등 단순한 일자리라도 지속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향한 우리 사회가 이들을 절망과 극단으로 몰고 죽음을 방기하는 사회적 타살을 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 노숙인들이 가장 생활하기 힘든 동절기가 다가왔다. 서울시가 겨울철 노숙인 보호를 위한 특별 대책을 세우고, 음악인 노영심씨가 여성노숙인 돕기 기금마련을 위한 음악회를 여는 일 등은 다행스럽지만 한계가 있다. 노숙인 문제는 이제 중앙정부가 관심을 갖고 예산지원 등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이들이 다시금 생업에 복귀할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의 근로복지정책과 재활 프로그램이 시급하다.


박명식 /출판인·서울시 구로구 오류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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