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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0.12 18:51 수정 : 2006.10.12 18:51

왜냐면 - 노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이해를 위하여

적지 않은 사람들이 ‘노 대통령이 맞긴 한데…’라고 끝맺음 없는 말들을 되뇌고 있다. 국민의 가장 원초적인 평가 잣대인 함포고복은 대통령의 원리를 보는 것이 아니라 양태에서 ….

이번 추석 연휴 기간이 차기 대선 여론 형성의 분수령이었다고 하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 잘한다고 하는 사람은 보기 어렵다. 여당과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정권에 대한 현실적인 신뢰를 의미한다고 할 때 지나친 지지도의 하락은 국가 전체의 결집력 차원에서 부정적 요인일 수밖에 없다.

노 대통령의 정치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한마디로 ‘살기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인데, 이는 사실 함포고복(含哺鼓腹)을 제일로 치는 백성의 처지에서 가장 단순하게 나올 수 있는 평가다. 그렇다 해도 이런 단순 도식으로만 대통령을 평가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복잡하게 변했기에 이해기준도 조금은 달리해보는 의식전환이 필요한 때다. 지금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쇳말은 ‘원리’와 ‘양태’이다. 원리와 양태를 제대로 본다면 대통령에 대한 쓸데없는 폄하로 말미암은 지지도 하락과 국민적 결집의 해체는 막을 수 있다고 본다.

흔히 결혼하려는 사람이 선을 많이 보면 오히려 되치인다고 한다. 확률로 보면 선을 많이 볼수록 좋은 배필을 구할 가능성이 높아지겠지만 실제 양태는 그렇지 않듯이, 원리와 양태의 괴리는 우리 일상 행동의 준거로까지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정치는 이런 준거가 안중에 없는 듯, 원리적으로 옳지만 양태적으로는 항상 되치이는 데에 문제가 있다. 국가 균형발전을 위한 혁신정책으로 행정수도 이전을 결정했지만 전국의 땅값이 수도권화했고, 혁신적인 조세정책은 시장 자본주의 국가 운영 원칙의 근본 원리이지만 부동산 투기의 양태는 전혀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더구나 대통령 스스로도 밝혔듯이 원리적으로 옳다는 소신만으로 임기 내에 너무 많이 벌어지고 있는 것도 문제를 더 가중시키고 있다. ‘선보기의 역설’이 말해주는 것처럼 원리와 다르게 나타난 현실의 양태가 다시 원리대로 수정되기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여당 일부에서 현 정치상황을 부중어(釜中魚; 가마 속 물고기가 자신이 삶아지고 있는 것을 모르고 유유히 헤엄치는 모양)로 빗대는 것이 바로 원리와 괴리되어 나타나는 현실을 무시하고 있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노 대통령이 맞긴 한데…’라고 끝맺음 없는 말들을 되뇌고 있다. 이렇듯 노 대통령의 정치는 원리적으로는 옳지만 항상 그것이 사회적으로 되치이면서 발생하는 것이기에 지지도의 하락이 반드시 대통령이 옳지 않아서 그렇다고만은 할 수 없다. 문제는 대통령도 국민도 원리와 양태의 간극 현상을 서로 간과한다는 점이다. 대통령은 국민이 원리(칙)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답답해하고, 국민은 대통령에게 양태를 외면한다고 서로 비난하는 것이 현실이다.

원리와 양태의 괴리는 우리 대통령, 혹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의 흐름을 지배하는 구조의 문제다. 세계적으로 번지는 실업문제는 역설적이게도 자기실현이라는 원리(칙)에서 경쟁적 노동력이 확대된 결과이며, 도구적 이성에 근거한 효율성의 정치 원리도 대중정치보다 인간관계에 의한 기술적 통치로 전락하는 양태를 보였다. 한마디로 원리대로 행동했다 해도 그 양태는 전혀 기대하지 않은 방향으로 갈 뿐만 아니라, 원리에 치중할수록 그 양태가 되치이는 역설적 구조가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가장 원초적인 평가 잣대인 함포고복은 대통령의 원리를 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 양태에서 나온다. 선보기의 역설이 이제 현실적 삶의 행동준칙이 되었다는 것을 이 정부가 곱씹어 생각해 보고 인정해야 할 것이다. ‘원리적 정치’ 그 자체가 아니라 ‘원리와 양태가 융합된 국민정치의 생태학’이 앞으로 생각해 보아야 할 평가 잣대이다.


김태경 /경인여대 교수·환경생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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