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미국 주도의 강대국 틈바구니에 있는 유엔이지만, 사무총장이 누구인가에 따라 미국 주도의 일방주의에 견제를 하기도 했다.미국이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한국의 반기문 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이 되는 것을 반길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세계의 시이오(CEO)’라고도 하는 유엔의 차기 사무총장이 한국의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거의 확정되었다. 4차 예비투표에서 반대표가 없었고 직후 다른 경쟁후보들이 모두 사퇴해, 9일 안보리 공식 투표에서 사실상 차기 총장으로 내정된 것이다. 일주일쯤 뒤 유엔 총회의 인준을 통과하면 내년 1월부터 임기 5년의 유엔 8대 사무총장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유엔 사무총장은 한국에 외교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가? 정부는 한국인 유엔 사무총장의 출현이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통일 환경 조성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지난 2월 반 장관이 유엔 사무총장 선거 출마를 공식 발표할 때 한국의 국제적 위상과 국가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주지하는 대로 유엔은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유지하며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국제협력을 증진하는 역할을 하는 국제기구로, 산하 직원을 포함해 1만6천명을 거느린 거대 조직이다. 하지만 그동안 미국 주도하의 체제로 인해 제3세계 국가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최근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비동맹운동(NAM) 정상회의에서 미국 뉴욕에 있는 유엔 본부를 브라질의 수도 브라질리아로 옮길 것을 제안했다. 대부분 언론에서는 이를 해프닝 정도로 취급하고 말았지만, 이런 제안은 미국 주도의 유엔을 재편하는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 주도의 강대국 틈바구니에 있는 유엔이지만, 사무총장이 누구인가에 따라 미국 주도의 일방주의에 견제를 하기도 했다. 아프리카 가나 출신인 현재의 코피 아난 사무총장은 제3세계 국가들의 의견을 상당 부분 대변하기도 했는데, 그는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 “유엔의 승인이 없는 침공은 불법”이라고 비판해 미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하지만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어느 국가보다도 많은 군대를 파병한 한국에서 후보로 나온 반기문 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이 된다면 이라크 파병과 같은 유사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에 코피 아난 사무총장 정도의 발언과 구실을 하리라 기대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어차피 자국 후보를 사무총장으로 내세울 수 없는 상황에서 자국의 주장을 가장 잘 이해하고 대변할 수 있는 인물이 후보가 되는 것을 선호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하버드대학을 나와 외교부 미주국장을 지내고 외교보좌관과 외교통상부 장관 재임 시 이라크 파병에 연관돼 있는 반기문 장관이, 미국이 선택하기에 주저함이 없는 인물일 것이다. 미국에 일방적으로 동조하길 거부하는 코피 아난 현 사무총장의 사례를 보더라도 ‘미 정부의 말을 잘 듣는 총장’이 미국으로서도 절실한 것이다.
한국인 최초의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자리는 우리에게는 매우 가슴 벅찬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이를 한국의 국가주의 관점에서 보는 시각을 넘어서 세계 평화주의 관점에서 본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미국 주도의 유엔을 제3세계 중심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상황으로 만들려고 한다면, 미국이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한국의 반기문 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이 되는 것을 반길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 자체가, 자국의 후보가 유엔 사무총장이 되는 국가적인 경사를 자국민이 반대하는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세계 평화를 위한 유엔의 위상과 역할을 제대로 세워야 한다는 당위성과 약소국 및 제3세계의 관점에서 보면, 유엔의 운전대를 한국의 반기문 장관이 잡는 것에 대해 반가움보다는 우려가 앞선다. 박용환 /한국기독청년학생연합회 대표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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