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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0.02 20:51 수정 : 2006.10.02 20:51

유병홍 - 공공노조연맹 정책국장 /

최근 노·사·정 합의를 둘러싸고 논란이 많다. 주요 관심은 전임자 임금과 복수노조로 쏠려 있다. 그러나 관련 노조로서는 ‘필수공익 사업장 필수업무 유지’를 더 큰 문제로 삼을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의문이 있을 수 있다. 병원이 파업해도 중환자실은 유지해야 하고, 항공사가 파업해도 관제업무는 유지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한 논란의 여지는 없다. 그런 업무는 당연히 유지해야 한다. 그건 상식이다. 노조가 필수업무 유지를 놓고 논란하지 않겠다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먼저 이번 노·사·정 합의에 참여한 정부, 사용자, 한국노총한테 묻는다. 이제까지 한국에서 필수업무가 중단된 파업이 있었던가? 이것이 문제가 된 적이 있었나? 앞으로 문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나? 만약 문제가 된다면 다른 제재 수단은 없다고 보는가? 대답은 간단하다. ‘모두, 아니다.’ 이런데도 필수업무 유지제도를 도입하려 하는 건 다른 꼼수가 있는 것이라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꼼수란 필수업무 유지란 명목으로 법으로 보장된 노동자들의 단체행동권인 파업권을 부정하자는 것이다. 한국의 노조는 파업 중 언제나 필수업무를 유지해 왔다. 그런데 정부와 사용자는 이를 무시하고 필수업무 유지라는 명분을 들어 파업을 사실상 금지시키려는 것이다. 파업이란 무엇인가? 현행 노동법에는 ‘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하는 행위’라고 나와 있다. 그런데 파업 중 ‘필수업무’를 유지한다고 하자. ‘필수업무 유지=업무 정상 유지’라는 식이 성립한다. 업무가 정상으로 유지된다면 파업이 아니다. 파업은 하나마나다. 결국 필수업무 유지는 파업을 무력화할 것이다.

이제까지 한국에서 필수업무가 중단된 파업이 있었던가? 이것이 문제가 된 적이 있었나? 이런데도 필수업무 유지제도를 도입하려 하는 건 필수업무 유지란 명목으로 법으로 보장된 노동자들의 단체행동권인 파업권을 부정하자는 것이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노·사·정 합의를 보면 필수공익 사업장에는 대체근로까지 허용한다. 파업을 하더라도 대체근로를 허용하면 업무가 정상으로 돌아간다. 업무가 정상으로 돌아가면 파업은 무력화한다. 결국 필수업무 유지, 대체근로 허용은 표현만 다를 뿐이지 내용은 하나같이 파업금지다. 말하자면 이중의 파업 잠금장치다. 거기에다 긴급조정에도 회부할 수 있다. 이것까지 포함하면 삼중의 파업 잠금장치다. 이렇게 되면 우리 헌법에 보장된 노동삼권 중 파업권(단체행동권)은 통째로 빠지는 거다.

이게 문제의 본질이다. 겉으로는 시민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해놓고 실제로는 파업권을 무력화하는 것이 합의내용이다. 더 심각한 것은 삼중 파업 잠금장치를 마련했을 뿐만 아니라 철도(도시철도), 수도·전기·가스·석유정제 및 석유공급 사업, 병원사업, 한국은행으로 제한된 현행 필수공익 사업에 혈액공급, 항공, 폐·하수 처리, 증기·온수 공급업을 추가해 오히려 파업권 제한범위를 더 넓혔다.

국제노동기구(ILO)는 노동자 파업을 금지하는 범위를 ‘엄격한 의미에서의 필수 서비스’로 한정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필수 서비스는 ‘그 중단이 생명, 개인적 안전, 대중 전체 또는 일부의 보건에 위해를 초래하는 서비스’를 뜻한다. 그러나 이번의 합의는 그 범위를 훨씬 넘어서는 것으로 어떤 기준으로도 합리화하기 어렵다.

한국의 민주노조들은 과거 노동악법에 맞서 싸웠다. 이제는 새로운 악법, 과거보다 더 정교해지고 폭이 넓어진 악법이 등장했다. 우리는 이 악법이 일단 제정되면 합법파업은 불가능해진다고 본다. 이제 노조는 존립을 위해서 악법저지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 시민 여러분의 이해를 구한다. 문제의 핵심은 필수업무 유지가 아니다. 이것은 노조에서 알아서 할 준비가 얼마든지 돼 있다. 핵심은 파업권 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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