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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9.28 21:47 수정 : 2006.09.28 21:47

왜냐면

정부 공단이 국민의 대리인으로서 질 높은 보험서비스를 제공하고 싶다면, 지금의 통합공단을 경쟁체제로 전환하고 가입자 의존도를 높여야 한다

정성수 건보공단 서울지역본부장은 지난 22일치 ‘왜냐면’에서 건강보험 약제비 적정화를 위해서는 선별등재(포지티브 리스트)의 도입, 제약산업의 선진화, 보험자의 협상력 강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제약산업의 선진화’를 제외하고는 틀린 주장이다.

왜냐면, 제약산업의 선진화로 제약시장에 공정한 경쟁과 가격체계가 형성되면, 의약품의 품질이 개선되고 가격이 저하되어 약제비 적정화에 기여할 것이지만, ‘포지티브 리스트’나 ‘보험자 협상력 강화’는 공정한 경쟁과 가격체계를 파괴시키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보험약을 선별 등재하고 공단의 협상력을 강화하여 보험약가를 결정한다는 생각은 일견 합리적일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우리나라 건강보험 ‘현실’에서 보면 시장(의료보험 시장)에서 거래되는 약의 품목과 가격을 정부가 직접 결정하는 것으로, 시장에 대한 횡포와 다를 게 없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누구와도 경쟁할 필요가 없는 정부 단일의 통합보험이다. 모든 국민, 모든 질병, 모든 의료행위에 대한 급여를 지향하는 네거티브 방식의 전일적인 체계로서 정부는 이 거대한 시장의 관리자, 독점 보험자의 지위를 갖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정부의 포지티브제는 약품시장의 수요자(국민, 의사)와 공급자(제약회사)에 대한 정부의 전면적인 기획과 통제를 의미한다. 의약품의 수요(처방과 복용)와 공급(제약산업)은 시장의 경제법칙이 아니라 국민의 공정한 ‘대리인’을 자임하는 정부 공단의 ‘합리적 계획’과 ‘선한 의도’에 귀속된다. 시장의 경쟁과 가격기능은 왜곡된다. 이에 반해 선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포지티브제는 약의 ‘시장 진입’과 ‘가격’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다보험자’ 체제 아래서 한 나라 안에서도 지역이나 민간보험·공보험자에 따라 등재방식도 각양각색이다. 개별 보험자와 제약사가 가격협상을 벌이는 경우에도 쌍방계약의 시장원리는 훼손되지 않는다. 정부 차원의 경제성 평가 역시 시장진입 통제가 아니라 정부 고시가를 위한 지표일 뿐이다.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허용되는 원칙과 한계가 있다. 약품의 시장진입을 정부가 규제할 수 있지만 그것은 모든 약에 똑같이 적용되는 규제여야 한다. 전문가인 의사도 알기 어려운 약의 효능과 경제성을 따져 정부가 약을 ‘선별’하고 선별된 약에만 시장진입의 특혜를 주고 거래가격을 정하겠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전체주의 발상이다.

우리나라는 경제성 평가의 기반이 부실하다. 이로 인해 신규진입에 따른 정부의 약가(고시가)결정과 사후관리가 부실한 것은 맞다. 그러나 정부 약가관리의 후진성이 정부가 약품시장을 ‘독점’하는 이유가 돼서는 곤란하다. 또한 ‘약제비 비중’은 약제비 적정화의 지표가 될 수 없다. 그것은 국민건강 관련 지출의 ‘약제 의존도’를 뜻한다. 2000년 전후로 약제비 지출이 급증한 것은 의약분업 정책 실패로 인한 구조적인 요인과 인구 노령화 상병질환의 변화 때문이다. 선별등재와 가격협상권은 공단의 약제비지출만을 줄이려는 반시장 정책이다.

결국, 정부의 약가 적정화 방안은 보건복지부와 공단, 심평원 등 정부기관의 이익만 키우는 잘못된 정책이다. 정부 공단이 진정 소비자인 국민의 대리인으로서 질 높은 보험서비스를 제공하고 싶다면, 지금의 통합공단을 경쟁체제로 전환하고 국가 의존도보다 가입자 의존도를 높여야 한다. 지방 분권화로 공보험 내에 경쟁체제를 도입하고 민간보험을 도입하여 민간과도 경쟁해야 한다. 그래서 ‘눈앞의 가입자’를 대리해야 한다. 방만하고 권력화된 체제로 ‘대리인’ 노릇을 자임하는 것은 소비자의 자유와 선택을 박탈하는 ‘공룡화’를 초래한다.

소비자를 진정으로 대리하고 싶다면 대상의 규모를 한정시키고 몸집을 줄이라. 그리고 소비자가 자신의 대리인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다른 대리인 집단(보험자)과 경쟁하라.


홍성주 /의사·의료와 사회포럼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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