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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9.28 21:47 수정 : 2006.09.28 21:47

왜냐면

약품 안전관리는 독극물을 질병이라는 특수상황에서 사용하는 일이므로 독성을 따지는 것이 주 업무인 반면, 식품은 먹을 수 있는 재료를 안전하게 먹게 하는 일이다

식품안전처를 신설하려는 정부의 방침에 대하여 일부 약사들의 반발이 거세다. 일부 약사출신 국회의원들이 중심이 되어 식품안전처 신설을 반대하는 의원결의안을 제출하였다고 한다. 국민의 안전하고 원활한 식생활이 또다시 이익집단들의 이기주의에 휘말리고 있음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물론 국회는 이익집단을 대변하는 기관이긴 하지만 국민의 안전한 먹을거리 확보에 대하여 일부 이익집단이 잘못된 길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는 막아야 한다.

식품안전관리는 의약품의 안전관리와는 분명히 다르다. 약품 안전관리는 사람이 먹을 수 없는 독극물을 질병이라는 특수상황에서 사용하게 하는 일이므로 독성을 따지는 것이 주 업무인 반면에, 식품은 먹을 수 있는 재료를 안전하게 매일 먹게 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식품은 독성을 따지기 이전에 이제까지 먹어온 습관과 영양가, 기호성 등을 포함한 이해득실을 종합적으로 신중하게 다루어야 하는 업무이다. 분석기술이 발달하면서 극미량의 성분도 검출되는 오늘의 과학기술 수준에서 약품을 다루듯 독성 여부만 따지다 보면 안심하고 먹을게 없다는 국민의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

이제까지 일어난 식품사건들을 분석해 보면 약품관리와 혼동된 시각에서 식품을 다룬 결과 엄청난 사회적 물의와 경제적 손실을 일으킨 경우가 적지 않다. 최근의 김치사건이나 학교급식 식중독 사건들에서도 잘못된 진단이나 처방의 예를 볼 수 있다. 김치 기생충알 사건은 식품안전관리를 약품관리처럼 하다가 발생한 대표적인 예이다. 배추는 토양에서 많은 미생물과 해충이 오염된 상태에서 수확한다. 이것을 잘 씻어 소금에 절이고 발효시키면 모든 위해 생물들이 제거되거나 사멸하게 된다. 그런데 죽은 생물의 흔적을 현미경으로 조사하여 유해물질이 있는 것처럼 발표하였으니 식품학자의 눈으로 보면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최근의 급식대란에 대한 대처를 보아도 약품조제에 책임을 묻듯이 직영이냐 위탁이냐에 관심을 두고 문제의 본질을 간과하고 있다. 단체급식의 위생 안전성은 최종 조리자 뿐만아니라 대량 유통되는 식품재료의 생산, 저장, 유통, 보관의 전 과정을 일관성 있게 관리해야 하는 것이다. 학교급식과 같이 한번에 수백명이 먹는 대량 급식은 가정단위의 음식조리와는 다르다. 식품의 공업적 공급체계와 위생 관리 전반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관리하는 것이지 독성의 관점으로만 관리한다면 급식대란은 계속 일어날 것이며 근본적인 해결이 요원해진다.

더욱이 요즘 건강기능식품이 장사가 잘된다 하니 독성물질을 다루는 제약생산라인에서 식품을 만들도록 허용하는 식약청의 결정을 볼 때 이제는 식품안전을 더 이상 식약청에 맡길 수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되는 것이다. 식품은 하루도 걸를 수 없는 우리의 생명에 직결된 사항이다. 따라서 식품안전관리의 문제는 정파의 당리당략이나 어느 한 집단의 이해에 따라 무원칙하게 끌려 다녀서는 아니 된다. 각 부처의 이해관계를 떠나서 식품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모두 고려한 종합적이고도 일관성 있는 식품안전 관리체제를 수립하고 국민을 안심시키는 식품행정이 필요하다. 정부와 학계가 오랫동안 연구하고 고심하여 내 놓은 안을 이해집단들이 국회의 이름으로 방해하려고 하는 시도는 지극히 염려되는 일이며, 국민은 생존권의 차원에서 이를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철호 /고려대 생명공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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