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9.28 21:44
수정 : 2006.09.28 21:44
왜냐면
단순한 번역상의 오류로 인해 서양 사람들의 오만한 태도가 강화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세계 속 위치는 지정학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외국인들이 그런 식으로 보든 말든 상관 안할 만큼 사소한 것이 아니다
외국 여행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시야를 넓힐 뿐 아니라 타국의 문화에 대해서도 통찰을 얻을 수 있다. 내 직업은 의사이지만 때때로 내게 가장 큰 즐거움을 주는 것은 문화·예술이 아닐까 한다. 여행 중 내가 즐겨 방문하는 곳은 박물관과 고궁과 화랑이다. 미국인들이 흔히 그렇듯이 나도 여행국의 언어를 읽고 쓰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현지인이 동행한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언제나 영문으로 번역된 표지판과 안내문 따위에 의존한다.
그런데 한국의 명소나 박물관 등에 영문 번역이 놀라울 정도로 적다는 점, 그리고 번역된 문장에도 오류가 많다는 점은 서울 도착 이후 곧 눈에 띄었다. 비영어권 국가를 여행하다 보면 영문 번역의 오류를 발견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러다가 이게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잖은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은 한국 국립박물관과 기념관 등에서 어색하거나 틀린 영어가 돌이나 동판 등에 새겨진 것을 목격했을 때였다. 그것들은 오랫동안(적어도 몇십년 이상) 두고두고 읽히도록 만든 기념비적인 기록들이었다. 공들여 아름답게 지은 건물과 기념비들에서 터무니없는 오류를 발견하면서 나는 “왜 저런 중요한 기록이 저렇게 무성의하게 번역되었을까” 하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번역상의 오류가 마음에 걸리기 시작하니 비슷한 현상이 자꾸 눈에 띄었다. 이 정도가 심해지니 나중에는 번역문장이 없는 것에까지 신경이 쓰이게 되었다. 하루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위대한 세기 피카소’라는 전시회에 몰두해 멋진 하루를 보냈는데, 관람 중 계속 “이렇게 훌륭한, 세계의 어떤 도시나 미술관에서도 부러워할 만한 전시회가 왜 영문 번역도 없이 제공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제는 대체 내가 왜 이런 번역상의 오류나 누락에 자꾸 신경이 쓰이나 하는 걸 이해하는 일이 또다른 탐색의 주제가 되었다. (이런 탐색은 부분적으로는 내 아내가 훌륭한 한국인 번역가이자 평론가라는 사실과도 상관이 있을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설령 내가 서양인의 오만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치더라도, 그보다는 훨씬 더 복잡하고 미묘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바로 내가 한국 어디서나 높은 수준의 번역을 접하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여행했다는 사실이다. 내게는 이런 기대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도 나는 한국이 지식과 학문을 존중하는 오랜 전통이 있는 나라임을 알고 있었다. 둘째, 한국은 앞서가는 산업국이자 기술 선진국이며 고등교육 인구의 비율이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나라 중의 하나다. 셋째, 정치적 상황에 대한 견해를 피력할 자리는 아니지만, 어쨌든 영어 사용자인 미군이 오십년 이상 비극적 분단상황에 놓인 한국에 주둔해왔다는 불행한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끝으로 내 미국생활 동안 훌륭한 영어문장을 썼던 한국인 친구들과 동료들, 학자들을 많이 만났던 개인적인 경험도 물론 높은 기대에 한몫을 했다.
위의 모든 요소들을 종합해 보건대 내가 번역상의 오류를 보고 의아하게 생각한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산업과 기술 선진국이자, 오랜 전통의 세련된 지적·문화적 유산을 가진 나라, 게다가 불행한 현대사의 전개로 말미암아 영어에 노출될 기회가 많았던 나라에 오면서 보통 수준 이상의 번역을 기대했으나, 결과는 정반대였던 것이다. 이 의아한 현상의 이유를 감히 내가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한국인들의 몫이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이런 ‘번역 문제’가 야기할 수 있는 의도치 않은 부작용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그런 부작용 중의 하나는 이런 단순한 번역상의 오류로 인해 ‘벼룩이 뛰어봐야 제자리’라는 식의, 서양 사람들의 오만한 태도가 강화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세계 속 위치는 지정학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외국인들이 그런 식으로 보든 말든 상관 안할 만큼 사소한 것이 아니다. 한국이든 다른 나라든 영어 사용자들의 구미를 절대적으로 맞춰야 한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아끼고 존경하는 사람으로서 문화적·지적 역사의 우수성과 오류투성이 번역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일이 한국인 자신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조언하고 싶다. 한국인의 지적·학문적 우수성을 고려할 때 시간과 노력만 투자한다면 그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또다른 부작용으로는 형편없는 번역 때문에 한국의 뛰어난 예술적 유산의 가치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소중한 문화유산들을 한국인 스스로 정확한 번역으로 소개할 만한 가치가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조차 있다. 이렇게 한국에서 발견한 영문 번역의 문제점을 지적한 이제 내가 할 일은 물론 한국어 습득을 위해 지금이라도 부지런한 노력을 경주하는 일이겠다.
그레고리 커터니어스 /정신과 전문의·미국 보스턴 의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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