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미국은 소수인종 차별을 바로잡고자 ‘우대정책’까지 시행해 왔다. 호남 차별을 해소하자면 정치·제도적 개혁도 필요하겠지만, 사회적 노력이 중요하다. 언론은 지역차별을 ‘지역감정’이라고 표현하여 본질을 호도하지 말아야 한다. 지난 7월12일 “전라도놈들은 이래서 욕먹어”라는 발언을 한 이효선 광명시장이 결국 한 달 뒤인 8월3일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는 그 일주일 뒤 과거 역대 보수정권 시절의 호남 차별을 두고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호남 차별 문제는 오랫동안 한국 사회를 지배해 온 가장 민감한 문제의 하나다. 누구도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하기를 꺼렸다. 우리 사회 곳곳의 ‘성역 깨기’에 앞장서 온 강준만 교수가 〈전라도 죽이기〉라는 책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언급한 것이 벌써 10년 전이지만 별로 달라진 것은 없어 보인다. 언론에서도 호남 차별이라는 용어를 직접 사용하지 않고 모호하게 지역감정이나 지역주의라고 표현하고 양비론으로 접근해 왔다. 그래서 어처구니없게도 “지역주의(regionalism)가 왜 나쁜 것이냐”는 반론이 등장하기도 한다. 여야 정권교체가 실현된 지 8년이 지난 지금에 호남 차별이 웬말이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호남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여전히 이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상태다. 지난 1월 〈한겨레〉의 보도를 보면, 4대 그룹 사장급 이상 주요 경영자의 출신 지역을 보니 그룹총수가 영남 출신인 삼성과 엘지에서 영남 출신이 각각 51%, 34%인데, 호남 출신은 각각 6%, 0%에 불과했다. 반면 총수가 북한과 경기 출신인 현대자동차와 에스케이는 지역편중 현상이 안 보여 대조됐다. 일부 사람들은 호남이 특정 정당 후보자를 95% 이상 지지한 것이나 과거 호남 출신들이 본적을 다른 지역으로 바꾼 사례 등을 거론하면서 손가락질하기도 한다. 그러나 특정 후보에 대한 절대적 지지는 과거 보수정권에서 지독한 호남 차별로 말미암아 형성된 피해의식과 더불어 상대 후보의 선거전략이 지역구도를 이용한 데 따른 거부심리로 해석할 수 있다. 호남 차별이 본격화하기 전인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 후보는 호남에서 32%를 얻었고, 김대중 후보는 영남에서 27%를 얻었다는 사실이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한다. 또한 과거 보수정권 시절에 본적을 바꾸고 고향을 숨긴 것도 호남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서 비롯한 비극일지언정 호남 비하의 이유가 될 수 없다. 호남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특정 지역의 것만은 아니다. 과거 보수정권 시절의 호남 차별은 영남과 더불어 다른 지역의 협력과 묵인 아래 자행됐고, 호남의 피해는 다른 지역의 이익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여야 정권교체 이후 호남이 상대적으로 득세하면서 과거 자신들이 누렸던 이익이 축소되자 그 불만이 누적된 측면도 있다. 항상 단일민족임을 내세우면서도 출신 지역을 기준으로 마치 다른 민족처럼 차별하는 전근대적 의식이 우리에게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학생 사회 집단 따돌림을 크게 문제삼으면서도 호남 따돌림을 두고는 언론이나 지식인 두루 문제제기를 하지 않거나 애써 모른 체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 보니 호남 차별은 기회만 주어지면 언제든지 다시 재발하는 고질병이 되었다. 미국은 흑인 등 소수인종 차별을 바로잡고자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까지 시행해 왔다. 호남 차별을 해소하자면 정치적·제도적 개혁도 필요하겠지만, 그 못지않게 사회적 노력이 중요하다. 언론에서는 지역차별 문제를 모호하게 ‘지역감정’이나 ‘지역주의’라고 표현하여 본질을 호도하지 말아야 한다. 시민사회와 지식인들도 지역차별 문제를 더는 외면하지 말고 이를 범죄시하는 운동을 폄으로써 망국적인 지역적 대립과 갈등을 완화하고 국민통합을 이루는 쪽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사실, 이효선 광명시장도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호남 차별 의식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평소 주변에서 누구나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쓰던 말을 무심코 했을 뿐인데, 그 말이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박힌 호남 차별, 지역 차별 의식 극복이 절실한 이유다.정재룡 /공무원·경기도 고양시 행신동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