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9.14 22:05
수정 : 2006.09.14 22:05
왜냐면
방부제를 비롯한 화학첨가물이 많이 섞인 크릴 분말 집어제는 바닷속에서 얼른 썩지도 않고 뭉쳐져 굴러다니면서 연안을 오염시키는 주범입니다.
푸른 바다에 낚시를 드리우는 풍경은 한가롭고 정겨운 그림입니다. 그러나 낚시인들이 다녀간 바닷속은 마구 뿌린 집어제로 인해 오염이 심각합니다. 낚시꾼들이 밑밥으로 애용하는 크릴새우는 모두 남극해에서 온 것입니다. 청정한 바다에서 잡아온 크릴은 그러나 너무도 싼값에 전 연안에서 남용되고 있습니다.
이 작은 몸집의 크릴이 뜻밖에도 남극 생태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생물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크릴은 몸길이 약 4㎝의 절지동물로 난바다곤쟁이과의 갑각류입니다. 서식지는 남극해 차가운 바닷속이며 따라서 ‘남극새우’라고도 합니다.
‘크릴보다 작은 생물 중 크릴이 먹지 않는 것이 없고, 크릴보다 큰 것 중에는 크릴을 먹지 않는 것이 없다.’ 이 말은 남극해에서 크릴새우가 지닌 생태계적 위치를 의미합니다. 남극 고래, 물개, 펭귄들이 식량 부족으로 위협을 받고 있는데, 이는 먹이사슬의 심장부에 있는 크릴의 수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 이래 크릴새우는 약 80% 가량 감소되었다고 세계의 해양학자들은 말합니다.
남극 해양생태계의 안녕과는 전혀 상관없이 우리나라에서 크릴은 낚시점에서는 너무나 싼 가격으로 언제나 쉽게 구입할 수 있고, 연안의 낚시터와 갯바위를 오염시키는 주범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특히 방부제를 비롯한 화학첨가물이 많이 섞인 크릴 분말 집어제는 바닷속에서 얼른 썩지도 않고 뭉쳐져 굴러다니면서 연안을 오염시키는 주범입니다.
해양과학자들은 ‘빙하는 크릴새우에게 마치 보육장과 같은 구실을 한다’고 설명합니다. 영국 남극조사국(BAS)의 앵거스 앳킨슨 박사팀은 1926~39년, 1976~2003년간 1만2000건의 크릴새우 어획을 조사한 결과 크릴새우가 남극반도의 북동쪽에 집중적으로 서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크릴은 섭씨 영하 1.8~4도에서 서식합니다. 수온이 영상 4도가 넘는 곳에서는 살 수 없다는 뜻입니다. 크릴은 식물성 플랑크톤을 먹으며 자라, 긴수염고래와 바다표범, 별오징어 등 각종 어류, 펭귄을 비롯한 다양한 바닷새의 먹이가 되어 남극의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크릴이 남극 생태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0%에 이른다는 것이 학자들의 주장입니다.
배타적 경제수역, 공해 축소, 자원 관리의 세계적 추세 등으로 인해 원양어업이 갈수록 까다로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남극 같은 저개발 해역에 사람들의 눈길이 가는 것은 당연한 현상일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이미 오래전부터 트롤어선이 연간 수만톤의 크릴을 잡아왔습니다. 그것은 대부분 취미와 레저활동을 위한 보조재로 값싸게 사용되고 있을 뿐입니다.
세계적인 멸종위기종. 그동안 남극대륙을 대표해온 해양생물들이 차례로 이 명단에 올랐고, 원인은 언제나 인간의 무분별한 남획이었습니다. 남극해역에서의 생물자원 수탈의 역사는 200여년에 이르며, 물개 사냥과 포경업으로 시작하여 생물종을 하나씩 차례로 멸종시켜온 생태계 파괴의 역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남극은 흔히 ‘지구 건강의 지표’라고 합니다. 남극의 빙하는 지구온난화의 위험을 가장 정확하게 경고하고 있으며, 이미 크릴은 빙하의 붕괴로 일차적인 위험에 처했습니다. 오늘 하루, 전국의 낚시꾼이 무심히 바다에 던져버리는 수백, 수천톤의 크릴 범벅의 집어제가 실은 지구 최후의 청정해역 남극의 생명줄을 조르고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아야 합니다.
윤미숙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 위원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