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우리나라 도서관 사정이 아직은 그리 선진적이지 못하다는 얘기가 문화계와 출판계 안팎에서 늘 나왔는데도 걱정은 불식시키고 기대는 기쁘게 담아낼 국립도서관 하나 만드는 일이 그리고 힘들었는지 의문이다. 지난 6월28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어린이·청소년 책과 독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날로 높아지는 때이니 무척 반가운 소식이었다. 어린이·청소년 책을 쓰거나 만드는 이들도, 비평하거나 연구하는 이들도 그 소식을 기쁘게 나누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나온 어린이문학 비평지 계간 〈동화 읽는 가족〉(푸른책들 펴냄)과 〈창비 어린이〉(창비 펴냄)에 이 도서관에 대한 비판 글이 실렸다. 문학평론가 황선열씨는 〈동화 읽는 가족〉 2006년 가을호의 ‘아동문학 발전을 위한 두 가지 제언’이란 글에서 이 도서관의 장서 소장 능력과 규모가 턱없이 부족함을 비판했다. “전시행정의 본보기가 아닐까” 하는 의문까지 내비치면서 말이다. 〈창비 어린이〉 2006년 가을호에서는 동화작가 채인선씨가 ‘책의 본질과 기본을 생각하며’란 글에서 “눈으로 본 결과는 실망스러웠다”며 쓴소리를 시작했다. 1층 어린이자료실을 둘러보니 “듣도 보도 못한 전집류 책들이 … 80%도 넘는 것 같다”며, 한국 그림책과 국내 자료가 턱없이 부족하거니와 분류도 제대로 안 되었다고 비판했다. 관장을 찾아가 “화도 내고 애원도 하다가 분류하는 데 힘들면 우리가 해주겠다는 말까지 했다”고 하니,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나 보다. 문을 열자마자 호된 비판을 받은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안타까운 일이다. 나도 어린이책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어린이와 청소년 대상의 국립도서관이 생겼다는 소식에 무척 흐뭇했는데, 이게 뭔가? 우리나라 도서관 사정이 아직은 그리 선진적이지 못하다는 얘기가 문화계와 출판계 안팎에서 늘 나왔는데도 걱정은 불식시키고 기대는 기쁘게 담아낼 국립도서관 하나 만드는 일이 그리도 힘들었는지 의문이다. 그러던 며칠 전, 이 도서관으로부터 내가 일하는 출판사로 공문이 하나 왔다. “9월 독서의 달을 맞이하여 어린이책 전시를 기획하고 있으니 … 협조를 부탁한다”는 내용이 있어 유심히 보았다. ‘국민서관 등 48개 출판사 사장(편집부장)’이 수신자인 이 공문은 9월에 ‘옛이야기 나와라 뚝딱!!!’이라는 전시회를 열 계획이니 책과 책에 들어간 원화의 인쇄물을 기증해 달라는 것이었다. 기증받고자 하는 책 목록도 있었는데, 모두 16종의 책을 부탁했다. 그것도 ‘권당 2권 이상’씩. 어안이 벙벙했다. 국립도서관이면 정부기관인데, 사기업인 출판사한테 책과 인쇄물을 기증해달라고 한다? 영세한 공부방이나 지역 어린이도서관에서 도움을 구하는 경우는 많이 봤다. 그런데 이건 나랏돈으로 운영하는 도서관에서 책을 달라는 것 아닌가. 물론 기증을 거절하면 그뿐이다. 하지만 공문에 있는 “어린이들에게 옛이야기도 읽히고, 출판사 홍보도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과 이런 발상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순 없다고 생각했다. 아이들한테 책을 읽히는 건 국립도서관이 원래 할 일이고, 출판사 홍보는 국립도서관의 몫이 아니기 때문이다. 짐작건대, 이 도서관이 의욕적으로 여러 행사를 기획하고 펼쳐보고자 애쓰는 것 같다. 도서관이 책 저장소가 아닌, 책을 중심으로 여러 사람이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문화공간, 연구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건 상식적인 인식이다. 그러니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의 그러한 노력에 찬물을 끼얹을 마음은 없다. 하지만 이번 공문을 받은 출판사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기분이 들었을지는 뻔히 예상된다. 예산 부족으로 책을 못 구해 도서관과 아이들이 만나는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된다면 도서관에서 일하는 분들도 힘 빠질 일일 터이다. 전시회 취지가 괜찮아 책을 보내기는 했지만, 취지가 좋다고 국립도서관이 출판사에 무언가 기증해주길 바라고, 기증이 안 된 까닭에 행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진 말아야 할 것이다. 더는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에 대한 실망과 비판이 더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최도연 /어린이책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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