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9.04 18:24
수정 : 2006.09.04 18:24
왜냐면
그는 우리 시대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면서 자신의 마음을 시로 노래하며 살고 있는 시인이다. 그런데 그에게 경찰 소환장이 날아왔다 … 시인이 죽은 시대는 암울한 시대다.
한때 몸을 팔아 살아가는 성매매 여성들의 얘기가 온갖 잡지에 흥밋거리로 다뤄진 세월이 있었다. 언제인가부터 그들의 얘기는 흥밋거리가 되지 못하고 모든 지면에서 사라져버렸다. 더불어 정치권은 국민들이 선거에 관심이 없다고 푸념을 한다. 자전거를 타고 전국 투어를 하면서 ‘선거로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변화시켜 보자’고 외쳐도 날이 갈수록 선거에 참여하는 숫자는 줄어만 간다. 즉, 선거하는 사람들이 선거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두 가지 사실을 보면서 몸과 정신을 파는 모든 것들이 일상화되어 더는 흥밋거리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슬프게 바라본다. 수많은 국회의원들이, 지방자치 의원들이 국민을 무시한 채 제 명예와 부를 쌓는데, 그까짓 몸 팔아 먹고사는 일이 무슨 흥밋거리가 될 수 있겠는가.
사람의 죽음에 관해서도 그런 의식은 도처에 널려 있다. 이해관계가 없으면 죽음에 대해서도 혀끝 한 번 차고 비정하게 돌아선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턴가 연쇄 성범죄와 연쇄살인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가고 있다. 이 무서운 무관심이 지속된다면 우리 사회는 노령화 사회가 되어가는 것과 버금가는 속도로 범죄와 살인이 난무하는 끔찍한 사회로 급변할 것이다.
얼마 전 경북 포항에서 하중근이라는 비정규직 건설노동자가 파업과 진압 과정에서 다친 뒤 뇌사상태로 17일을 견디다가 죽음을 맞이했다. 많은 노동자들이 이 죽음을 경찰의 과잉진압에서 생긴 일이라며 항의했고, 경찰은 자신들의 행위가 아니었다고 극구 부인하고 있다.
이 사태를 보고 송경동 시인이 분노했다. 그는 오래 전 건설노동자로 일하며 살았던 시인이다. 우리 시대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면서 자신의 마음을 시로 노래하며 살고 있는 시인이다. 그는 포항 사태를 보며, 하중근의 죽음을 보며 지난달 4일 민주노총이 주최한 집회에서 “더 이상 죽이지 마라”며 비정규직 건설노동자의 고통을 노래한 추도시를 낭송했다. 그런데 그에게 경찰 소환장이 날아왔다. 아마도 ‘외부세력’이라고 규정하고, 포항의 건설노동자들을 배후에서 조종했다는 덫을 씌우고 싶은 게 아닌가 한다. 참으로 답답하고 우울한 시대다. 광주학살의 주범 중 한 사람이었던 노태우 정권이 있을 때도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시인이 죽은 시대는 암울한 시대다. 예로부터 시인을 탄압한 국가는 여지없이 독재정권이 생명을 유린하고 인권을 짓밟던 국가였다. 그 사실은 우리나라의 시인들이 수난을 받았던 일을 상기해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이번에 만해평화상을 받은 김지하 시인도 ‘민주주의’를 노래하다 오랜 세월 감옥에서 보낸 분이다. 고은 시인은 어떤가. 또 우리 민족이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김남주 시인은 어떤가. 우리는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 시절에 수많은 시인들이 투옥되고 고문받았던 사실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나는 요즘 세월이 후퇴하고 있다는 얘기보다도, 모든 것이 무관심으로 흘러가버려 일상이 되고 있는 무수한 폭력이 두렵기만 하다. 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어느 날 당신에게도 예기치 않은 폭력이 다가와 당신과 당신의 가족을 망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동시에 노무현 대통령에게도 말하고 싶다. 어쩌면 당신은 국민의 말을 무시한 가장 오만한 지도자로서 민중의 삶을 고단하게 만든 대통령으로 기억될 수도 있다고.
이인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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