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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8.24 21:24 수정 : 2006.08.25 10:26

왜냐면

중학교 통합사회의 교과서명이 ‘사회’로 제시되면서 일선 학교 교육과정 담당자들은 ‘사회=일반사회’로 인식해 역사·지리의 부족한 자리를 일반사회 교사로 채운다. 최근에는 이런 문제가 고등학교로 확대되고 있다.

얼마 전 미국 지리학 잡지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젊은이들의 지리적 문맹이 심각하다고 밝힌 기사를 접했다. 18∼24살 사이의 젊은이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3%는 뉴스에서 매일 접하는 이라크의 위치를 지도에서 찾지 못했으며, 75%는 이란과 이스라엘의 위치를 몰랐다. 응답자의 75%가 중국의 언어를 영어라고 답했으며, 중국의 인구가 미국의 두 배라고 답한 젊은이들도 절반에 이르렀다. 내셔널지오그래픽 협회의 회장은 “지리적 문맹은 다른 나라와의 관계에 영향을 끼치고, 우리를 세계로부터 고립시킨다”며 “지리적 지식이 없으면 젊은이들은 21세기의 도전에 대응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지리적 문맹은 어느 정도일까? 전국지리교사모임이 올해 초 전국의 고등학생 2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3분의 1이 독도가 남해에 있다고 대답하였으며, 3분의 2가 여섯 대륙을 나열하지 못했다. 또한 압록강 너머에 있는 나라가 러시아라고 알고 있는 학생도 3분의 2나 됐다. 영토나 자원 측면에서 볼 때 세계로 나아가야 할 필요성이 높은 우리의 현실에서 청소년들의 지리적 문맹은 이미 심각한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현장 교사들은 이러한 학교 교육의 부실 문제를 ‘통합사회’에서 찾는다. 현재 전국의 중·고등학생 상당수가 사회수업을 비전공 교사한테서 배운다. 통합사회에서는 역사·지리·일반사회 전공자가 비전공 분야를 가르치도록 교과서 내용을 학년별로 뒤섞어 놓았다. 현 중학교 교육과정의 지리·일반사회·역사의 내용은 약 30:20:50%의 비율로 짜였는데, 교사 수는 15:57:28%로 심한 불균형을 이룬다. 더욱이 중학교 통합사회의 교과서명이 ‘사회’로 제시되면서 일선 학교 교육과정 담당자들은 ‘사회=일반사회’로 인식해 역사·지리의 부족한 자리를 일반사회 교사로 채운다. 그만큼 일반사회 전공 교사들이 지리와 역사를 가르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이런 문제가 고등학교로 확대되고 있다. 결국 비전공자로 말미암은 부실 교육은 학생들의 흥미 감소, 학습부담 증가, 사교육 강화로 이어져 고스란히 학생과 학부모의 몫으로 돌아가고 있다.

중학생 상당수가 가장 어려워하는 과목으로 ‘사회’를 꼽는 것도 일맥상통한다. 중학교 사회 정도는 공부하면 누구나 가르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교과의 전문성을 무시한 발상이다. 교과 내용을 총체적으로 이해한 전공교사는 내용을 구조화해서 중요한 부분을 중심으로 우리들의 생활과 연결시키면서 쉽고 재미있게 가르칠 수 있다. 하지만 비전공교사는 내용을 이해하는 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리며,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하더라도 세 과목(지리·역사·일반사회)을 사회적 흐름을 따라가며 섭렵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통합사회’를 인정하는 것은 곧 공교육의 질이 떨어져도 괜찮다는 얘기다. 교육부가 지금까지 숱하게 제기된 중등 ‘통합사회’의 문제점과 전국 지리·역사·일반사회 교사모임의 분리·독립 요구를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교육을 책임지는 자세가 아니다. ‘통합사회’체제를 해체하면 역사교육 파행의 문제도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역사교육이 전체 교육과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은데도 ‘역사교육의 축소’를 이야기하는 까닭은 ‘사회’교과의 일부분으로 인식되면서 비전공 교사가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일본 등 주변국들에 비해서도 우리나라의 역사 수업시수는 적지 않다. 현재 논의 중인 새로운 교육과정에서 중학교 3년 동안 사회교과에 주어진 10시간 중 역사과목이 5시간을 차지하고 지리·일반사회 과목은 각각 2시간 또는 3시간이 될 참이다. 지리와 역사가 대체로 비슷한 비중을 차지하는 다른 나라들보다 오히려 우리의 지리 수업시수가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얼마 전에 홍세화씨가 “오직 남보다 더 배부른 경제동물”이 되려는 흐름 속에 ‘자유인’은커녕 ‘인간’을 찾기 어려워졌다며 어린이들에게 지구본을 사주자고 쓴 글을 읽었다. 지리교육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레바논 분쟁 문제, 아프리카 난민 문제, 사막화의 확산, 열대림의 파괴와 지구 온난화 문제, 물 분쟁, 자연 재해 등 이루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지구촌 문제를 가르치고 배우며 평화와 연대, 환경 의식을 심는 교과다.

‘알면 사랑하게 된다’고 했던가. 우리 아이들에게 지리교육은 배워도 그만, 배우지 않아도 그만인 지식이 아니라 세계 속에서 살아갈 인간으로서 당연히 알고 실천해야 할 덕목을 가르치는 교과다. 차기 교육과정에서는 ‘통합사회’ 과정을 해체하고 지리교육이 제자리를 잡게 되길, 특히 현장에서 ‘세계지리’가 더욱 비중 있게 다뤄지길 희망한다. 교육부와 지리교육계의 자성과 노력이 필요한 때다.

김대훈/전국지리교사모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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