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켜내는 것은 일반 ‘사람들’, 우리밖에 없는 것이다. 이 세상 어느 곳에서 누군가가 죄없이 다치고 학살당한다면 자신이 어느 나라 사람이든, 어느 민족이든 상관없이 가슴아파해야하고, 이를 막고자 작은 노력이라도 해야 “때로는 개입해야만 합니다. 인간의 삶이 위협받을 때, 인간의 존엄성이 짓밟힐 때, 국경과 국가적 이해는 모두 무의미해집니다. 인간이 인종·종교·정치적 견해로 말미암아 박해받을 때는 언제나 그 곳은 그 순간 세계의 중심이 됩니다.” 이 말을 누가 했을까? 1986년 인종차별 철폐와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엘리 위젤이라는 미국 작가가 했다. 그런데 이 사람이 힐러리 클린턴을 비롯한 미국 정치인들과 함께 뉴욕의 유엔 건물 부근에서 레바논을 침공한 이스라엘 지지 시위를 벌였다.(<한겨레> 7월18일치) 처음에는 ‘이스라엘 반대 시위’인데 글자가 잘못 인쇄되었나 해서 다시 찬찬히 읽어야 하는 기막힌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백번 양보하여 이 사람이 2차대전 당시 가족들이 독일군에게 희생당한 유대인이라 하더라도, 노벨 평화상을 받는다는 것이 그 사람이 ‘진정한’ 평화주의자라는 것을 보증하는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그렇다면 엘리 위젤의 ‘개입’이란 전쟁을 말하는 것인가?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는 것에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 정치인들은 아예 논외로 한다 해도, 작가이자 학살의 아픔을 겪은 사람이 자기 ‘민족’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또다른 학살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노벨 평화상을 받았던 사람들이 인종과 민족, 국적에 관계없이 유엔 건물에서 전쟁 반대 시위를 벌여야 하는 게 아닌가. 자국 군인 2명을 납치했다는(전투 중에 발생한 전쟁포로일 수도 있다) 이슬람 저항단체 헤즈볼라에 대한 보복으로 이스라엘은 레바논에 미사일을 ‘비처럼’ 쏟아부어 수백명의 민간인 희생자를 내고 항구와 공항, 발전소와 연료 저장고를 파괴하고 있다. 독일군에게 수많은 유대인들이 학살당한 것은 잊어서는 안 될 아픔이지만 그것이 수십년 동안 수천 수만명의 중동인 희생자를 내고 이제 다른 한 나라의 존립과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존마저 위협하는 군사적 공격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미국은 당연히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나섰고 미국이 주도하는 유엔은 정전 결의안도 내지 못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는 그리도 짧은 시일에 제재 결의안을 냈던 유엔이 말이다.그런데 이갈 카스피 주한 이스라엘 대사는 “민간인 희생자가 늘고 레바논 기반시설이 많이 파괴된 것은 정말 유감스럽지만” 공격은 계속된다고 했다. “레바논이 치르고 있는 희생과 대가가 크지만, 레바논 정부에도 도움이 된다”며 말이다(한겨레 7월20일치). 국적에 관계없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유발하고 학살을 정당화하는 오만함에 기막힐 뿐이다. 이러한 상황은 대한민국 밖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언제 우리에게 닥칠지 모르는 비극이고, 언제 우리가 일으킬지 모르는 비극이다. 그래서 지금,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함부로 침공하여 파괴하고 살상해도 막을 견제장치가 없는 시대, 우리가 가지고 있는 평화의식과 평화를 지키기 위한 개인의 노력과 행위에 대해 깊게 고민해봐야 한다. 결국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켜내는 것은 일반 ‘사람들’, 우리밖에 없는 것이다. ‘유대인’만이, ‘미국인’만이, ‘한국인’만이 아니라 이 세상 어느 곳에서 누군가가 죄없이 다치고 학살당한다면 자신이 어느 나라 사람이든, 어느 민족이든 상관없이 가슴아파해야 하고, 이를 막고자 작은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 특히 북한 미사일 발사를 기회 삼아 한반도 위기를 부추기고 혼란을 가중시키는 보수 언론과 정치인들이 우리의 삶과 생명을 좌지우지하지 않도록. 김현미/성공회대 엔지오(NGO)대학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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