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다시는 전쟁으로 말미암은 비극과 따님과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세계평화를 위해 힘을 합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런 당신의 모습이야말로 따님이 저세상에서 바라는 진정한 당신의 모습 아닐까요. 사키에님, 당신이 딸 메구미씨에게 가지는 심정은, 저 역시 딸을 둔 같은 연배의 사람으로서 충분히 이해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메구미씨의 일에 대해 장기간 동안 보여주고 있는 언동을, 저로서는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당신의 그와 같은 언동은 단지 부당하게 딸을 잃은 부모로서의 분노나 한이라기보다는, 다분히 일본 정권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당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이 비단 저만의 생각일까요? 당신은 매스컴에 나올 때마다 일방적으로 북한을 비난하기만 합니다. 이런 당신의 모습을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보고 있노라면, 답답하다 못해 참으로 딱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입니다. 이렇게 해서는 문제가 해결되기는 커녕 오히려 일을 그르치게 되지 않을까 우려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언동을 되풀이하는 당신의 진의가 도대체 무엇인지, 묻고 싶을 정도입니다. 당신은 일본 국내뿐 아니라 미국까지 건너가서 부시 대통령에게 북한을 응징해 달라고 호소하는가 하면, 마치 전쟁을 선동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왔습니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에서 보았듯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무차별 폭격과 무자비한 살육을 감행하여 평화를 사랑하는 전세계의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는 그 부시 대통령에게 말입니다. 흡사 아이들 싸움에 어른보고 폭력을 행사해 달라고 조르는, 분별 없는 사람처럼 여겨집니다. 현재 우리민족은, 동족상잔으로부터 이익을 얻고자 하는 일부 제국주의 집단의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평화통일을 위해서 화합의 길을 착실히 다져나가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는 과거 불행한 시대에 일어났던 모든 문제, 예를 들어 한국전쟁때 미군의 양민학살 문제, 남북한에서 일어난 서로의 납치사건, 그 외 전쟁으로 인한 희생의 문제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메구미씨의 문제도 이중 한 가지로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서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이 같은 시기에 당신이 일본 국내의 매스컴은 물론이고 미국, 서울을 오가면서 북한을 비난하고 자극하고 다니는 데는 어떤 의도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앞에서도 말씀 드렸듯이, 불행하게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심정을, 역시 자식을 둔 어미로서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당신의 딸 메구미씨가 북한에 납치되어 갔고, 똑같이 한국에서 납치되었다고 하는 남성과 결혼하여 딸 하나를 낳고 사망하였다는 사실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북한 쪽은 이 사실을 인정하고 앞으로 이산가족 상봉때 서로 만나게 해줄 것을 약속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몇 년 전에 북한이 일본인 납치자 다섯 명을 일본에 일시 귀국시켰을때, 상호의 약속을 깨뜨린 것은 일본 정부입니다. 어찌 되었든 국가간의 약속을 인도주의라는 이유를 들어서 일방적으로 지키지 않은 것은 당신들 일본 쪽이었습니다. 이러한 것은 약자를 무시하는 강자의 오만 아닐까요? 제가 일본에 살았을 때, 일본인 선생님에게서 진정한 일본인은 약자를 배려하고 신의를 중히 여긴다고 배웠습니다. 저에게는 이 같이 진정한 일본인 친구들도 많이 있습니다만, 그렇지 않은 일본인도 매우 많다는 데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이 점은 개인뿐 아니라 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일의 바이체커 대통령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과거의 역사의 기억을 상실하는 국민과 민족은 반드시 그 과오를 되풀이한다.” 이 말은 과거의 제국주의를 반성하지 않고 자기비판도 하지 않는 일본국민에게 해당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들 일본인은 과거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시대에 저지른 일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당신들 말만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는 진정한 과거사 해결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적어도 관동대지진때 6천명의 무고한 조선인을 학살한 일이라든가, 전쟁때 수십만명의 조선인을 강제연행한 일, 수많은 부녀자들을 납치하여 군의 성노예로 만들었다가 패전 후에는 죽이거나 넝마조각처럼 내팽개쳐 버린 일 등에 대해 정확하게 조사하여 밝히는 일이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일들은 결코 과거의 일이 아닙니다. 이로 인해 피해를 받은 사람들이 가족들이 남·북한에 많을 뿐 아니라 피해당사자들이 지금도 생존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일본의 한 평화주의자 지식인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일본에 수십 명 혹은 수백 명의 슬픔이 있다면, 저쪽에는 수십만 수백만 명의 눈물이 있다고 말입니다.사키에님, 적당한 표현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국민적 관심과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집단이 당신에게 보내는 환대를 깨끗이 끊어내 버리고, 지극히 순수한 평범한 어머니의 마음으로 돌아오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비록 원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메구미씨는 북한에서 결혼하여 자식까지 낳고 나름대로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이런 메구미씨가 과연 당신처럼 미국의 침공과 무차별 공격에 의해 북한이 멸망하기를 원할까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보십시오. 전쟁의 희생자는 군대보다 수천, 수만 배나 많은 민간인들입니다. 만약 미국이 북한을 침략하게 되면, 메구미씨의 유일한 혈육인 딸 역시 미군의 무차별 폭격 아래 놓이게 됩니다. 당신의 외손녀가 말입니다. 사키에님, 저는 이제 제 삶의 끝이 보이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 동안 참혹한 전쟁과 어려운 시기를 경험할 만큼 경험하였습니다. 친족도, 친구도 많이 잃었습니다. 그때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뼈저리게 겪으면서 이 나이까지 왔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 지금 당신의 슬픔은 우리 민족에게는 지극히 일반적인 것이어서 거기에 비하면 당신의 메구미씨에 대한 슬픔은 호사스러운 슬픔이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입니다. 불행하게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탄식이 지금 당신이 보이는 그런 모습일까요? 당신의 양심에 묻습니다. 이라크에서 아들을 잃은 미국의 한 어머니가 그 같은 비극이 자기만으로 끝나도록 이라크 미군 철수를 호소하면서 백악관 앞에서 매일 데모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그 어머니의 슬픔과 당신의 그것이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합니까? 사키에님, 당신이 진정으로 메구미씨의 영혼을 위로하고자 한다면, 저 미군의 어머니처럼, 과거 일본이 우리 민족과 중국등 여러나라에 가한 헤아릴 수 없는 범죄에 대해 사죄하고, 미국의 전략에 공조해서 일본이 피해를 준 북한을 이유없이 적대시하고 갖은 문제를 가지고 북한의 목을 옥죄는 일본정부의 부당함을 규탄해야 할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힘은 약하다 하지만, 이 세상에 다시는 전쟁에 의한 비극과 메구미씨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세계평화를 위해서 서로 힘을 합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런 당신의 모습이야말로 메구미씨가 저 세상에서 바라는 진정한 당신 모습 아닐까요. 모쪼록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류춘도 /자전적 수기 〈벙어리새〉 지은이·전 청화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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