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과업설명서의 구체적인 내용에는 다시 새로운 국제 규격의 축구경기장을 건립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고, 애국선열 묘역의 성역화 사업과 어울리지 않는 기존 시설물의 철거나 이전 문제 등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국가보훈처가 지난해 12월 ‘효창공원 독립공원화 조성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모순된 행위를 하며 효창원 독립선열의 정신을 훼손시키는 잘못을 범하려 하고 있다. 국가보훈처가 건축설계 공모를 하면서 내세운 과업설명서의 목적에는 “효창공원은 김구 선생을 비롯한 삼의사와 임정 요인 등 7인의 애국선열 묘역이 있으나 효창운동장 등 이질적인 시설물들과 혼재되어 있어 독립공원 성역화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으므로 광복 60년 기념사업으로 효창공원을 민족성지로 조성하여 민족정기를 고취시키고자 함”이라 밝혀 놓았다. 곧, 효창운동장 등 이질적인 시설물을 철거하고 효창원을 명실상부한 성역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과업설명서의 구체적인 내용에는 어떻게 된 일인지 기존 운동장을 철거하고 다시 새로운 국제 규격의 축구경기장과 부대시설을 건립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고, 애국선열 묘역의 성역화 사업과 어울리지 않는 반공기념탑·노인회관·놀이터 등 묘역 안팎 기존 시설물의 철거나 이전 문제 등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국가보훈처가 추진하는 사업은 실제로는 효창원 독립공원화 목적과는 상관없는 그저 공원 새로 꾸미기 정도에 지나지 않을 뿐인 것이다. 300억원의 국민세금 대부분을 주차장과 축구장 공사비로 사용한다면 효창원을 민족성지로 조성하여 민족정기를 고취한다는 목적과는 처음부터 맞지 않는 것이다. 국가보훈처는 지난달 보훈의 달을 맞아 호국영령들의 희생정신을 기리고 나라사랑 정신을 함양하기 위해 기존 군가와 진중가요를 록, 댄스, 국악, 재즈 등 다양한 갈래로 편곡한 앨범을 발표했는데, 이 앨범에 친일가요가 포함되어 앨범을 회수하느라 법석을 떠는 물의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지난 2003년에도 1996년 2월 국가보훈처가 발간한 〈21세기와 동양평화론〉이란 책자의 겉표지에 ‘일본해’로 표기한 지도를 사용한 것이 드러나 책자 회수에 나서기도 했다. 국가보훈처가 나름대로 의미있는 일을 해보려고 하다가 빚은 실수겠지만 국가 위신을 추락시키고 민족정기를 훼손하는 엄청난 잘못을 범한 것이다. 그랬던 국가보훈처가 이번에는 ‘효창공원 독립공원화’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걸긴 했지만 효창원 성역화라는 취지를 반영할 수 없을 것은 불을 보듯 분명하다. 잘못된 책자나 앨범은 회수하고 다시 만들 수도 있지만 효창원 성역화 사업은 한번 잘못해 놓으면 다시 회복하기 어렵다. 애국선열의 정신을 유지·계승하는 일은 계획을 작성하고 추진하는 모든 과정에서 신중하고 또 신중하게 해야 하는 일이므로 포장된 명분 때문에 졸속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애국선열을 위한다며 광복 60년 기념사업이라는 미명 아래 수백억원의 국민세금을 들여 이루어지는 사업이 원상회복 차원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효창원 애국선열들의 정신을 훼손하는 결과가 될 것이므로 차라리 나중을 기약하고 지금 진행하려는 사업은 중단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국가보훈처가 진정으로 효창원을 성역화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건축설계경기 과업설명서의 내용을 백지화하고 효창원 성역화에 필요한 다양한 방법, 예컨대 대국민 공청회나 효창원의 역사와 의의를 조명하는 학술회의 등을 통해 관련 단체나 국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서 효창원 성역화 계획을 처음부터 다시 세워야 한다.육철희 /신시민운동연합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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