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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7.06 19:04 수정 : 2006.07.06 19:04

왜냐면

지금의 교복은 각자의 체형과 체질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예복’이다. 교복으로 상징되는 권위의 폭력이, 부조리한 것에 저항하지 않게 하는…

세상의 일 가운데 가장 한심한 일이 잘못을 대물림하는 것이다. 잘못인 줄 알면서, 부당한 줄 알면서도 금세 잊어먹고 자손들에게 똑같이 미련한 일을 겪게 하는 것이다. 지금의 학부모들은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를 보면서 그게 결단코 픽션이 아니란 걸 안다. 우린 그런 시절을 지나왔다. 그러면서 그때 가졌던 분노를, 마치 시원한 맥주 한잔 걸치며 영화 한 편 보듯 추억 삼으며 가볍게 잊는다.

거창하게 교육현실, 교육철학에 대해 논하려는 게 아니다. 그저 딱하디딱한 일 하나 해결하자는 것이다. 우선 한 가지만이라도 우리 아이들 숨통 좀 틔워 주자. 여름 무더위를 나야 하는 교복 말이다. 여름 교복, 순면도 아니다. 신축성도 없다. 시원하지도 편하지도 않다. 속옷도 꼭 챙겨 입어야 한다. 허리에선 땀띠가 난다. 여학생은 단추를 끄르고 앉아 부채질을 해야 한다. 체육시간이 되면 탈의실도 없는 학교에서 거의 입었다 벗었다 하며 더위를 식혀야 한다.

쉬는 시간에 운동장에 나가 놀고 싶어도 엄두가 안 난다. 뻣뻣한 교복 입은 채로 하는 운동이란 어불성설이다. 몸이 근지러운 아이들은 그래서 술취한 동네 아저씨처럼 단추를 풀어헤치거나 러닝셔츠 바람으로 운동한다. 여학생들은 그마저 할 수 없어 교복치마에 옷핀을 꽂고 말타기를 하다가 단추가 떨어지거나 넘어져 다친다.

지금의 교복이란, 각자의 체형과 체질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예복’이다. 학생들은 365일 국민의례하러 학교 다니는 게 아니다. 공부하고 놀고 쉬어야 한다. 그때 입는 것은 예복이 아니라 작업복, 일옷이어야 한다.

얼마 전 어떤 학교에서 여름 교복으로 이른바 폴로형 셔츠에 반바지로 결정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개인적으로 지난해 이맘때 ‘교복의 일옷화’를 주제로 학생들과 수업을 한 적이 있다. 우리들의 의견도 여름 교복으로는 그런 옷을 추천했다. 그러면서 난 왜 학생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행동하지 않는지 갑갑했다. 의견을 모으고, 연대하고, 외치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인데 학생들은 교실 안에서 ‘되지도 않을 일’에 대해 떠들고 말아버렸다. 학생들의 그런 태도야말로 ‘교복의 음모’라 할 만하다. 교복으로 상징되는 권위의 폭력이, 부조리한 것에 저항하지 않게, 일사불란하게 규칙에 맞게, 일탈됨 없이 신축성 없는 교복 속에 옥죄어야 하는 ‘재미없는’ (신선, 창의적, 자율적, 개성적이라는 개념과 반대라는 의미에서) 학생들을 만들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다리가 길어보이는 학생복’이라는 광고 문구를 붙여서 교복을 파는 업자들에게는 펄쩍 뛸 일인지 모르지만, 이제 더 이상은 우리 아이들에게 불편한 옷을 입으라고 강요하면 안 된다. 제발 우리 아이들에게 예복이 아닌 작업복, 일옷을 입히자. 사소한 것이다.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 자유무역협정의 진상을 수업할 것이냐 말 것이냐처럼 거창한 담론이 아니다. 사소하면서도 절실한 것, 마음만 먹으면 쉽게 해치울 수 있는 일, 그걸 하자는 것이다. 눈으로 보고도 하지 않는다면 게으르거나 비겁한 것이다. 어느 쪽이든 둘 다 정의롭지 않은 일이다.

김종옥 /서울 동작구 사당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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