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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6.26 20:04 수정 : 2006.06.26 20:04

왜냐면

전교조가 모두가 사랑하는 순백한 조직이기를 바라는 것은 나의 희망이기도 하지만, “가르치는 것은 싸우는 것이다”라는 김진경씨의 시처럼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이 있다.

전교조를 걱정하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일부 보수 정치인, 조·중·동을 비롯한 몇몇 신문들이야 그렇다 쳐도 최근 전교조 초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진경씨의 비판, 그의 발언으로부터 강하게 자극받아 쓴 것이 분명해 보이는 〈한겨레〉의 사설 ‘전교조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나’는 전교조 조합원 교사인 나로서는 많이 아팠다.

돌이켜보건대 전교조는 초기의 혹독한 시련기를 거치면서, 그 이후 사방이 쇠창살로 꽉꽉 막힌 듯한 교육 현장의 답답한 분위기 속에서 너무 많은 투쟁을 강요당해 왔고, 그 강요된 투쟁의 과정에서 김씨가 지적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했고, 한겨레 사설이 걱정하는 대로 국민으로부터 많이 멀어진 조직으로 비칠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 몇 가지 반론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전교조가 초심을 잃고 교사의 이익만을 대변하고 조직이기주의에 빠졌다고 비판한 것에 대해 묻고 싶다. 전교조를 ‘전국교직원성자조합’의 줄임말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전교조의 정체성을 가장 우선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바로 ‘교직원 노동조합’이라는 것이다. 전경련이 경제인들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대변하듯이, 전교조가 교사들의 처지와 이익을 우선 생각하는 것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전교조가 모두가 사랑하는 순백한 조직이기를 바라는 것은 나의 희망이기도 하지만, “가르치는 것은 싸우는 것이다”라는 김진경씨의 시처럼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이 있다.

김씨는 또 “전교조가 낙후지역 학생 등의 교육소외계층을 위해 한 게 뭐 있는가?”라고 물었다. 전교조 교사, 아니 현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울고 웃고 고민하며 실천하는 수많은 교사들을 모욕하지 마라. 전교조 교사들이 하려는 많은 일들에 이념적 잣대를 들이대며 가로막고, 시기상조론, 현실론, 예산타령 등을 내세우며 못하게 한 게 누구인가? 그 스스로도 말하고 있지 않나? “교육개혁은 고립된 섬”이며 정부의 개혁정책이 중산층 이상의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에만 집중되어 저소득층이나 소외계층을 위한 개혁정책은 의제 설정조차 못하고 있다고. 권력을 쥐고 있는 정부가 그런 판인데 전교조가 내놓은 수많은 정책들이 어떤 대접을 받으며 표류해 왔는지 그는 더 잘 알고 있을 게 아닌가?

김씨는 전교조를 ‘교육발전의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교육의 발전된 모습은 무엇인가? 자립형 사립고, 외국어고에다 국제중학교까지 보태 평준화의 근간을 무너뜨리고 경쟁교육을 강화하는 것인가? 성과급을 확대지급하고 근무평정에 교원평가까지 보태 교사들을 지금보다 더욱 치열하게 경쟁시키면 학교는 나아질까? 교육 관료들이 그토록 반대하는 교장 선출보직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선거 때마다 내거는 국내총생산(GDP) 6% 교육예산은 다 어디로 갔나? 저출산 때문에 학령 아이들 수는 줄어든다는데 왜 학급당 학생수는 줄지 않는가? 왜 갈수록 대학 서열화와 수도권 대학 집중 현상은 더 심화되고 있는가? 이런 근본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자는 전교조가 교육 발전의 걸림돌이다? 이런 것들만 일별해 보아도 전교조가 교육발전의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 버팀목이었음이 증명되고도 남지 않는가.

이미 자신은 교육계 인사가 아니라고 말하는 김씨에게 과한 부탁이 되겠지만, 나는 어느 날 그가 글을 쓰기 위해 교단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리고 청와대 교육문화비서관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기대와 함께 ‘교사’ 김진경, ‘교육 운동가’ 김진경이 가졌던 첫 마음을 잊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그가 우리 교육을 걱정하며, 깊은 곳에 전교조에 대한 사랑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다만 그 사랑과 관심은 좀 더 섬세하게 표현되어야 하고, 그 겨누는 방향과 내용은 정확해야 한다.

이번의 경우처럼,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수구세력들의 존재를 뻔히 알고 있음에도 그 기대에 확실히 부응하는 듯한 어법을 쓴 것은 크게 유감이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참교육’의 길을 어렵게, 열심히 열어가고 있는 전교조를 그는 도맷금으로 너무 쉽게 매도해 버렸다. 지금 전교조에 필요한 것은 손쉽고 일방적인 매도가 아니라 따끔하면서도 애정 어린 정확한 비판이다. 그러한 비판이라면 전교조는 그것을 자양분으로 삼아 한층 더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노영민/부산 금정구 구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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