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6.26 20:04
수정 : 2006.06.26 20:04
왜냐면
축구는 이미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부의 생산과 분배구조를 갖는 거대 산업이 되었다…이것을 사회발전의 창조적 에너지로 승화시키고…
4~5년 전쯤에 이런 우스갯소리가 돌아다닌 적이 있다. 여자가 데이트하는 상대로부터 가장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의 첫째가 군대 얘기, 두 번째가 축구 얘기이며, 가장 듣고 싶지 않은 얘기는 군대에서 축구 한 얘기라는 것이었다. 화제의 빈곤과 남녀 간 취미의 차이를 보여주는 유머다.
그런데 이런 유머는 이제 통하지 않게 되었다. 어떤 여론조사 기관에서 월드컵 한국-토고전 시청률을 조사한 결과 여성 시청자의 비율이 남성보다 높았다고 한다. 이런 변화는 일상 취미활동 지도에도 나타난다. 전국적으로 150개 정도의 여성축구단이 등록돼 있으며 여성축구대회도 많이 생겨 전국규모 대회만 해도 연간 네 번이나 된다고 한다. 이런 여성 축구의 붐은 물론 월드컵이 만들어낸 사회현상이다. 전국의 주요 야외응원장을 뜨겁게 달구었던 수십만의 인파 속에서 남녀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해졌다.
일찍이 이렇게 많은 군중이 취미로 즐거움을 위해 모인 과거를 우리는 경험하지 못했다. 군중들이 운집한 곳은 항상 분노, 항의, 야망의 함성과 투쟁이 교차하던 역사의 현장이었을 따름이다. 해방 이후 새천년 새벽까지를 관통하여 현대사를 수놓았던 그 수많은 궐기대회, 규탄대회, 시위, 정치 유세를 보라. 친구 아니면 적이 존재할 뿐인 흑백논리의 시대가 끝나고 축제의 환호와 승리에의 염원으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축구는 보여주었다. 더 이상 데이트 상대로부터 외면받는 천덕꾸러기가 아닌.
응원도 몇 단계 진화를 이루어 노래, 동작, 소도구 등에 이르기까지 구호에 맞추어 3-3-7 박수나 치던 시대와는 천양지차다. 정한과 애조의 아리랑이 축구를 통해 진취와 웅비의 역동적 음률로 재생되었다. 〈예기〉에 치세의 음악은 편하고 즐거우며 망국의 음악은 슬프며 생각에 빠지게 한다고 쓰고 있다. 월드컵 응원가를 보자. 눈물젖은 두만강이나 목포의 눈물에 묻은 ‘눈물’의 흔적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냉전과 이념의 시대가 낳은 색깔 콤플렉스와 고정관념도 월드컵 열기의 용광로에서 화로 속의 눈송이처럼 녹아 사라졌다. 붉은 악마라니. 도깨비뿔은 모르는 사이에 앙증맞은 축제의 소품으로 태어났다. 빨갱이는 머리에 뿔이 난 악마일 것이라고 상상하며 자라던 시절을 떠올려 보라.
축구는 이미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부의 생산과 분배구조를 갖는 거대 산업이 되었다. 그래서 지나친 상업주의와 언론의 과도한 월드컵 세몰이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시급한 국가적 의제를 매몰시켜 스포츠 공화국을 부추긴다는 이유로 일각에서는 반월드컵 운동까지 전개했다.
산업을 축구 진화의 종착역으로 만들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축구는 이제 성, 지역, 계층 간의 차이를 잇는 하나됨의 축제,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자리잡았다. 이것을 사회발전의 창조적 에너지로 승화시키고 문화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것은 축구팬들의 몫이다. 이것이 승부와 관련된 국가적 자존심보다 중요한 일이 아닐까.
김혁동 /〈한국방송〉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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