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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6.12 20:42 수정 : 2006.06.12 20:42

왜냐면

‘기쁘다’와 ‘즐겁다’는 저마다 같은 뿌리에서 태어난 짝과 더불어 쓰인다. ‘기쁘다’는 ‘슬프다’와 짝이고, ‘즐겁다’는 ‘괴롭다’와 짝이다.

내가 쓴 ‘기쁘다’와 ‘즐겁다’의 뜻풀이(〈한겨레〉 5월 30일치)를 읽고 다르게 본다는 분이 있고, 그분이 그렇게 보는 바를 서슴없이 글로 써서(6월 9일치) 세상에 내놓으니 참으로 반갑다. 게다가 나에게 다시 이런 글을 쓸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니 신문 편집하는 분들 또한 고맙다.

내가 알기에 우리 토박이말의 뜻과 쓰임새를 놓고 옳고 그른 바를 따지고 밝혀 보자며 나서는 사람도 일찍이 없었고, 우리말의 뜻과 쓰임새를 두고 생각을 나누도록 자리를 마련한 신문도 일찍이 없었다. 그만큼 우리 토박이말은 생각하고 따지고 밝힐 만한 것도 아니라고 여기며 살았던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며 나는 더없이 반갑고 고맙다.

사실, 내가 ‘기쁘다’와 ‘즐겁다’의 뜻을 지면이 좁아 겨우 뿌리만 이야기했기 때문에 김창진 교수처럼 고개를 갸우뚱한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헷갈리게 써온 지가 이미 반세기를 넘어 머리에 남은 체험의 기억은 믿을 것이 못 되고, 지난날 쓰임새를 낱낱이 찾아 살피는 데는 적잖은 시간이 걸리는 까닭에 섣불리 나서서 가늠해낼 사람은 흔치 않다. 이제부터라도 짓밟히며 견뎌온 우리 토박이말을 살피고 돌보려는 이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기쁘다’와 ‘즐겁다’는 내가 우리 토박이말에 처음으로 눈길을 돌린 스무 해쯤 들이께부터 마음에 걸려 있던 낱말이다. 그때 내가 몸담았던 대학에서 학생들과 토론을 벌였을 적에도 김 교수와 같은 의견을 내놓는 학생들이 있었다. 김 교수가 ‘기쁘다’는 “곧바로 왔다가 (사라지고)”, ‘즐겁다’는 “꾸준히 이어진다”고 했는데 그런 느낌도 뿌리가 마음에 내린 것과 몸에 내린 것의 차이에서 말미암은 것으로 쉽게 가닥이 잡혔다.

김 교수는 두 낱말이 쓰이는 보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 가운데는 헷갈려 쓰인 것도 없지 않으나 거의는 곰곰이 들여다보면 그 뿌리가 속의 마음에서 오는 것과 겉의 몸에서 오는 것으로 밝혀지는 것들이다. 일테면, 〈논어〉에서 보기를 끌어왔는데 그것은 중국 글말을 뒤친 것이라 꼭 마땅한 감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그 뒤침은 요즘처럼 헷갈림이 없던 지난날 우리 겨레의 쓰임새라 살펴볼 값어치가 있다.

알다시피 ‘기쁘다’는 ‘열’(說=悅)을 뒤치고, ‘즐겁다’는 ‘락’()을 뒤친 말이다. 그런데 열(悅)은 ‘마음’(心)이 ‘풀어짐’(兌)을 뜻하는 글자고, 락()은 ‘큰북’(白)과 ‘작은북’( ‘나무받침’(木)에 올려놓고 두드린다는 뜻으로 만든 글자다. 이것으로도 ‘기쁘다’가 마음에서 오고 ‘즐겁다’가 몸에서 온다는 느낌의 뿌리를 올바로 가늠할 만하지 않은가!

그리고, ‘기쁘다’와 ‘즐겁다’는 저마다 같은 뿌리에서 태어난 짝과 더불어 쓰인다. ‘기쁘다’는 ‘슬프다’와 짝이고, ‘즐겁다’는 ‘괴롭다’와 짝이다. 그런데 ‘슬프다’는 속인 마음에서 솟아나 몸으로 퍼지는 느낌이고, ‘괴롭다’는 겉인 몸에서 일어나 마음으로 들어가는 느낌임을 좀 더 쉽게 짐작할 수 있을 줄 안다. 그러나 내 뜻가림도 온전하다고 우길 생각은 없다. 우리 함께 깊이 살피고 헤아리며 밝혀가기를 바랄 따름이다.

김수업/우리말교육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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