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6.01 21:50
수정 : 2006.06.01 21:50
왜냐면
월드컵은 재미있다. 세계인의 축제이고, 축구라는 스포츠가 주는 빠른 스피드의 묘미도 빠뜨릴 수 없다. 하지만 축제가 현실을 잠식해 버려선 안 된다. 분위기에 휩쓸려 현실을 잊거나 어려운 이들의 고통에 눈감아서도 안 된다.
월드컵 시즌이 다시 돌아왔다. 방송과 신문에서는 분위기를 띄우느라 바쁘고, 사람들도 들뜨기 시작하는 듯하다. 2002년의 연이은 승리의 감동과 짜릿함을 다시 느껴보고 싶은 것은 남녀노소 모두 같을 것이다. 승패에 관계없이 그때처럼 전국민이 하나되어 응원하던 그 감동을 다시 느껴보고 싶어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엄연히 다르다. 2002년에는 우리나라에서 열린 월드컵으로 관광유치 효과, 우리나라 국민들의 선진의식과 한국의 발전상을 온 세계에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만, 이번엔 지구 반대편 독일에서 열리는 월드컵이다. 우리의 삶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는 말이다.
물론 월드컵은 재미있다. 세계인의 축제이고, 축구라는 스포츠가 주는 빠른 스피드의 묘미도 빠뜨릴 수 없다. 축제는 즐기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축제가 현실을 잠식해 버려선 안 된다. 삶과 축제는 분명히 다르다. 축제 분위기에 휩쓸려 현실을 잊거나 어려운 이들의 고통에 눈감아서도 안 된다. 그런 의미에 비추어 볼 때, 지금 언론과 방송에서 월드컵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정도는 좀 지나치다고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공중파 방송 채널 어디를 돌려봐도 월드컵, 월드컵 이야기뿐이다. 본격적으로 월드컵을 홍보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뉴스에 평택 대추리 소식이나 자유무역협정 관련 뉴스들이 조금 나온다 싶더니 월드컵 열풍과 함께 순식간에 자취를 감춰버렸다. 요즘 뉴스를 보면 월드컵 소식들 때문에 다른 사회 현안들은 뒷전으로 밀려나거나 아니면 아예 나오지도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한국 대표팀의 경기 분석과 상대팀의 전력 분석이 과연 전 국민, 나아가 미래 세대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는 자유무역협정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려주는 것보다 그렇게 중요한가? 수십 년간 피땀 흘려 가꿔온 땅을 뺏기고 갑자기 거리로 나앉게 된 대추리 주민들의 고통보다도 오늘 경기에서의 실책을 탓하는 것이 나라 전체로 보아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
스포츠 경기, 더구나 월드컵과 같은 세계적인 대회는 사람을 빠져들게 하는 특징이 있다. 스포츠 경기의 이런 특성 때문에 과거 많은 나라에서는 국민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유도하기 위해 이런 기회를 이용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몇 달 전 세계야구클래식(WBC)에 가려 새만금의 마지막 물막이 공사가 조용히 지나가버린 일이 있었다. 또다시 이런 식으로 언론이 본분을 게을리 해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듯 이번 월드컵이 자유무역협정 본협상 시작, 대추리 문제 등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들이 많은 시기와 겹쳐 새만금 때와 비슷한 일이 다시 닥칠까 염려된다.
월드컵을 즐기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 아니다. 나도 2002년엔 선수들의 발길질 하나하나에 웃고 박수 치던, 지극히 평범한 대한민국의 학생이었다. 단지 월드컵의 그늘에 가려 사람들이 정작 자신들과 직접 관계되는 수많은 문제들을 보지 못하게 될 것이 우려되는 만큼, 언론과 시민 모두 다 좀 더 이성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월드컵이 또다시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게 아니라서 전체적인 분위기도 4년 전만큼 열광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런 만큼 언론도 월드컵 관련 보도를 어느 정도는 자제할 필요가 있다. 이럴 때일수록 대중이 꼭 필요한 정보들을 놓치지 않도록 더욱 신경을 써서 냉정하게 보도를 하는 것이 언론의 본분인데 오히려 지금 한국은 언론이 분위기를 몰아가며 온 국민을 또다시 과열된 흥분의 도가니에 빠뜨리려 하고 있다. 국민들도 마찬가지다. 이런 분위기에 휩쓸려 우리 사회의 아파하는 사람들의 신음에 귀를 닫아서는 안 된다. 응원을 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것은 좋지만, 축제는 축제일 뿐이다. 현실과 축제는 별개의 문제다.
임혜송 /경기 과천시 중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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