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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6.01 21:47 수정 : 2006.06.01 21:47

왜냐면

시각장애인들에겐 현실적으로 직업선택의 자유가 없다. 사회적 편견과 관습으로 인해 일할 권리를 제약받는 것이 현실이다.

2006년 5월25일, 헌법재판소가 안마사 자격을 시각장애인에게만 주는 것은 헌법에 위배된다는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같은 사건을 2003년 6월에는 헌법재판소에서 합헌이라고 결정한 바가 있다. 3년간의 시차를 두고 합헌 또는 위헌이라는 법 해석이 다르게 나온 것이다. 합헌 결정을 내릴 때에는 국가는 공공복리 차원에서 시각장애인에게 안마사 자격을 부여하는 것은 위헌이 아니라고 하였고, 이번에는 모든 국민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누릴 수 있으므로 시각장애인에게만 안마사 자격을 부여하는 것은 위헌의 소지가 있다고 결정하였다.

고려, 조선 시대에는 대부분의 시각장애인들이 점복업과 악고의 직업을 가졌으며, 1912년 일제 점령기부터 조선총독부에서 안마사, 침사, 구사 자격을 시각장애인 직업으로 인정하였으며, 8·15 독립 이후 미 군정 시대에 안마사, 침사, 구사 제도가 잠시 폐지되었다가 1960년대부터 안마사 제도가 부활되어 현재까지 시각장애인들에게만 주어져 왔다. 지금 시각장애인계의 주요 직업은 안마사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밖에 점복업, 사회복지사, 성직자, 특수학교 교사 등의 몇몇 직종만이 시각장애인들의 생계터전이 되고 있다.

그런데 이번 위헌 결정으로 대부분의 시각장애인들은 그나마 갖고 있던 생계수단인 안마사 자격제도를 직업선택의 자유라는 이유로 몇몇 비장애인들에게 송두리째 빼앗기게 되었다. 안마업은 촉각만으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기에 시각장애인들에게 가장 적합하며 유일한 직종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국민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유일한 생계수단을 빼앗는다면 중증 시각장애인들은 무엇을 하여 먹고살라는 것인가.

이번 판결이 비장애인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지 모르겠지만 중증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사형선고와 같은 것이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같은 조건에 산다면 왜 불만이 있겠는가. 비장애인들에게는 직업선택의 자유가 있을지 모르지만 시각장애인들에게는 현실적으로 직업선택의 자유가 없다. 사회적 편견과 관습으로 인해 일할 권리를 제약받는 것이 현실이다.

헌법재판소의 이런 판결이 나올 때까지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행정부와 입법부는 무엇을 하였는가. 참여정부의 뒷걸음질 장애인 복지 정책은 앞서도 있어왔다. 예를 들면, 국가가 책임져야 할 장애인 정책을 지방분권이라는 이름 아래 대부분의 지방으로 이양한바, 잘사는 대도시와 그렇지 못한 농어촌에 거주하는 장애인들의 복지 양극화가 심화되었고, 장애인 고용장려금 축소, 엘피지(LPG) 차량 할인 축소 등 큼직큼직한 장애인 복지에 대한 축소를 단행하고 있으며 장애인 차별 금지에 대한 법적인 근거 조처를 몇 년째 잠재우고 있다.

직업선택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공공복리, 국가에서 책임져야 할 장애인 정책도 그에 못지않을 것이다. 자기 능력에 맞는 하나의 인격체, 독립된 인간, 자립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한다. 기본적 생존권마저 박탈한다면 그 누가 가만히 있겠는가. 직업선택의 자유도 같은 환경이 주어졌을 때 가능한 것이지 그렇지 못한 것에서 출발한다면 국민의 합의를 얻지 못할 것이다.

이재호 /경북점자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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