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공정택 서울시 교육감님께 드리는 글
국제중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해외 영어연수를 받아야 한다는 말도 들립니다…초등학교의 평화도 이미 깨지고 있고 유치원생들마저도 사교육의 먹잇감이 될 것이 뻔하니, 어른들이 이토록 어린아이들에게 폭력을 써도 되는 것인지요. 1천만명의 수도 서울, 교육 가족들의 다양하고도 거대한 그리고 교육에 대한 치열한 욕망 앞에 서면 교육계에서 아무리 직위가 높다 하더라도 한 개인은 참으로 작아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입니다. 하나의 교육 정책은 발표되자마자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첨예한 이해관계 구조로 변해 버립니다. 서울 교육의 무거운 짐을 지고 노심초사하시는 교육감님의 노고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며칠 전 한 신문에서 교육감님이 하신 말씀을 읽으면서 이건 정말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문 기사의 제목이 ‘평균인 길러내는 교육은 의미 없다’ ‘똑똑한 1명이 100만명 먹여 살리는 시대’였고, 내용 중에는 ‘무한 경쟁의 시대’를 강조하셨는데, 보는 순간 이건 너무 자극적이고 감정적이며 참으로 부당하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이런 말을 경제인이나 재벌 그룹의 총수가 했더라면 놀라움은 좀 덜했을 것입니다. 국제중학교 설립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청심국제중이 성공을 했다고 하는데, ‘어떤’ 성공을 했다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학비가 1000만원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경쟁률이 21 대 1이었다니 100명 모집에 2100명이 응모한 것이고, 2000명의 어린 초등학생들이 패배자가 되어 ‘경쟁’의 쓰디쓴 맛을 보았습니다. 서울에 국제중이 생기면 그 경쟁률은 상상을 초월할 것입니다. 응모를 했다가 떨어진 수많은 학생들과 응모조차 못하는 학생들은 모두 꿈도 키워 보기 전에 패배자부터 되고 맙니다. 국제중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미리 해외 영어연수를 받아야 한다는 말도 들립니다. 각 지방에서도 경쟁적으로 국제중이 생기겠지요. 이제 국제중이 아닌 대부분의 ‘국내중’은 학부모들에게 눈에 차지 않는 학교가 될 것이니, 공교육에 대한 불신은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과학고나 외국어고가 설립되면서 일반 고등학교가 그 지경이 되지 않았습니까? 초등학교의 평화도 이미 깨지고 있고 유치원생들마저도 사교육의 먹잇감이 될 것이 너무 뻔하니, 우리 어른들이 이토록 어린아이들에게까지 폭력을 써도 되는 것인지요. ‘좋은학교 만들기 자원학교’도 솔직하게 ‘입시교육 중심 자원학교’라 말씀하십시오. 교육감님께서 강조하시는 ‘학력(學力) 신장’은 솔직하게 말하면 ‘학력(學歷) 신장’이 아닌가요? 학교마다 치열한 경쟁구조를 만들어 일류대학에 더 많이 넣어서 서울교육청의 위상을 높여 보겠다는 것은 아닙니까. 해당 학교 선생님들에게 0.01의 가산점까지 주겠다고 한 것에 대해서는 할 말을 잊습니다. 공정택 교육감님, 사회가, 아니, 수많은 기업체가 자기만 아는 공붓벌레는 필요없다고 그렇게 소리를 치는데 어찌하여 서울교육청에서는 성적에 매몰된 그런 아이들을 찍어내라고 닦달을 하는가요. ‘학력’을 너무 강조하면 다른 교육적 덕목들이 소외된다는 것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21세기 우리 사회는 도전 정신을 가진 사람을, 창의력과 더불어 사는 지혜, 폭넓은 대인 관계, 남에 대한 배려, 덕성을 지닌 ‘사람’을 길러달라고 요구하고 있지 않습니까? 2006년 오늘, 서울의 교육이 고작 ‘학력 증진’이라는 버전만으로 21세기를 말하고 대비한다면 그것은 너무도 초라합니다. 학교 현장의 안일과 나태에 대한 교육감님의 안타까움을 모르는 바 아니나, 교육감님의 말씀을 대할 때마다 조선·중앙·동아일보의 사설을 그대로 읽는 듯한 답답함이 있습니다. 서울이 서울다워야 한다면, 서울 교육은 서울 교육다워야 합니다. 서울의 교육은 대한민국의 교육을 선도하는 의연함이 있어야 합니다. 발상을 바꾸어 서울 학생들에게는 자신감과 자긍심을 심어주고 도전 정신을 기르게 한다고 목표를 바꾼다면 끝내는 학력도 높아질 것이고, 진정한 경쟁력도 생기며 사회에서 요구하는 ‘사람’을 키워낼 수 있을 것입니다.공교육을 보호하고, 그리하여 아이들의 고통과 절규를 누구보다 먼저 귀 기울이고 앞장서서 막아주어야 할 교육감님이 오히려 공교육을 공격하고, 평준화의 틀마저 위협하여 초등학생은 물론 유치원생까지 사교육의 정글로 모는 것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교육감님은 어떤 교육감으로 기억되기를 바라십니까? ‘학력 증진’과 ‘경쟁’을 강조했다가 결과적으로 사교육 증진만 부추겼고, 기진맥진한 공교육에 다시 일격을 가해 더욱 궁지에 몰아넣은 교육감, 서울 교육의 당당함과 품격을 떨어뜨린 교육감으로 기억되는 것을 바라지는 않을 것입니다. 고춘식 /전 서울 한성여중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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