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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5.23 14:44 수정 : 2006.05.23 14:44

이 글은 5월 19일치 <한겨레> ‘왜냐면’에 목원대 문윤수 교수가 기고한 ‘상업예술과 애국심의 잘못된 만남’에 대한 반론과 보론이다.

지난 한일 월드컵에서 시민들은 대표적인 국가 상징 중 하나인 태극기로 갖가지 다양한 디자인의 옷과 장신구를 만들었다. 그러한 파격적인 시도는 그동안 국경일에나 접했던 태극기의 엄숙주의를 깨고서 태극기를 좀 더 시민들에게 친숙한 상징으로의 전환을 체험케 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강당이나 운동장보다 길거리에서 누구나 쉽고 친근하게 부를 수 있는 애국가를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다음으로 문 교수는 “어떤 형식, 어떤 방법으로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가’에 상업성이 침투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며 “어떤 형식, 어떤 방법으로든”이라는 강한 수사를 구사하고 있는데, 이는 다른 의견마저 차단시킬 여지가 있다. 가령 최근 진보진영에서는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의 친일논란과 관련하여 애국가 교체 논쟁이 한창인데 이러한 애국가에 상업성이 침투해서는 안 된다는 ‘성역 만들기’가 자칫 과거에는 생각할 수도 없었던 애국가 교체라는 시민사회의 발칙한 상상력과 비판마저 봉쇄시킬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문 교수가 지적한 애국가와 상업성의 결합은 “찜찜한 결합”이며, 시민정신으로 저지해야 하는 것에 동의한다. 그러나 문 교수가 말했듯이 “이런 상업광고주 개입은 불가피”하다면 이러한 모순을 안고서 시민사회에 최대한 긍정적인 방향과 활력을 도출하는 데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필자가 애국심과 상술의 “찜찜한 결합”보다 더욱 우려하는 점은 지난 한일 월드컵 열기가 이후 미군 장갑차 사건으로 인한 촛불시위로 이어졌다는 사회학적 분석이 과연 이번 월드컵 시즌에도 적용될 수 있는가하는 회의감 때문이다. 즉, 상업성의 모순을 안고서라도 월드컵의 열기를 시민사회의 중요한 쟁점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가 말이다.

진작부터 타오른 이번 독일 월드컵의 열기 속에서 시민들은 내전을 방불케 한 대추리 사태와 한미자유무역협정에 대해서는 매정하리만치 싸늘하게 눈을 감고 있다. 시민사회는 언제부턴가 26돌을 맞은 5.18 광주민주화항쟁 기념식처럼 ‘끝나버린 내전’으로 다시는 우리에게 오지 않을 ‘기념식’으로만 기억하며 현재진행형인 내전을 인식하고 있지 못한다는 점, 나는 이러한 역사적 무감각이야말로 두렵다.


애국가에 대한 ‘쿨’한 사고는 필요하다. 관건은 이러한 ‘쿨’한 사고를 사회 모순을 해결하는 자양분으로 정초시키는 가 혹은 한바탕의 축제로만 배설하는 가다. 이는 근래 불거진 ‘87년 체제의 위기’를 측정하는 척도이기도 하다. 황진태/<대자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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