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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5.19 19:31 수정 : 2006.05.19 19:31

신승구/서울 금천구 독산3동

흔히 계륵(鷄肋)이라 함은 닭의 갈비로 먹기엔 부실하기만 버리기엔 아까운 것을 이르는 말이다. 최근, 헐리웃에서 날아온 거대한 허리케인 <미션 임파서블3>는 개봉 닷새 만에 164만이라는 엄청난 기록과 동시에 한국에서도 완성도 높다는 평을 들어온 <사생결단>, <맨발의 기봉이>, <국경의 남쪽>, <도마뱀> 등을 줄줄이 무릎 꿇게 했다. 이런 이유로 올 7월부터 시작되는 스크린쿼터의 악몽이 벌써부터 찾아온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충무로를 서늘하게 하고 있다.

아시다시피 스크린쿼터라 함은 한국영화가 상영할 수 있는 의무기간을 40% 이상, 146일 이상으로 상영할 수 있도록 보호해주는 장치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쿼터제 폐지는 자국의 상영률이 50%를 넘어가 한국영화의 질적인 성장이 이루어졌다는 이유로 없어도 괜찮지않냐는 움직임이 서서히 붉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허나, 이것은 단지 표면적인 결과에 불과했다.

1998년 <쉬리> 개봉 이후, 대기업은 속속들이 영화산업에 뛰어들기 시작했고, 이를 계기로 거대 자본을 갖춘 영화들이 속속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스크린쿼터가 방어벽 역할을 해오고 있는 동안 질적 토대가 빈약했던 한국영화는 너무나 많은 과오를 범해왔다. 한국영화산업이 단순한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다 보니 정말 질적인 영화보다는 언제 걸렸다 사라진지도 모르는 풀빵 영화들만 줄줄이 찍어져 나오고, 그것들이 여태껏 헐리우드가 지켜준 146일을 채워온 것이다. 그러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 뒤늦게 수작들이 줄줄 터져 나온다 한들, 정말로 관객들의 눈을 매료시킬 명작이 나와 구름떼같이 몰려들지 않는 이상, 아무리 <한반도> 같은 대작을 만든다 한들 1000만이 넘기는 힘들다는 지적이다.

아주 오래 전, 멀티플렉스가 들어서기 전에 한국영화는 단성사나 중앙극장 같은 대형 영화관들이 관객을 가득 메웠다. 하지만, 당시엔 영화를 관람하는 것이 학교에서 시험이 끝난 학생들을 위해 단체관람시키는 연중행사정도였기 때문에 한 번에 몇 백, 몇 천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영화관이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이유도 없을뿐더러 영화의 종류도 너무나 다양해졌다. 이런 다양성 속에서 한국영화는 봉준호, 박찬욱, 임순례, 홍상수, 장준환, 김기덕, 이정향, 허진호, 김지운, 류승완, 박철수, 김인식, 장윤현, 윤종찬 등의 감독들만이 질적인 성장을 이루는데 겨우 명맥을 유지했을 뿐이다. 더구나 이런 감독들이 선두에 나서 있을 당시 뒤에서는 수많은 독립영화 감독들과 스텝들이 적게는 몇 백에서 몇 천에 이르는 소규모 제작비 안에서 무보수로 수작을 위해 발품을 팔아가며 땀과 노력으로 힘써왔다. 이런가운데, 극장 배급 수익에만 눈이 먼 투자자와 제작자들은 상영일수가 줄어들자, 이제야 영화인들과 더불어 스크린쿼터를 반대하고 나서긴 했지만, 정작 영화인들과 투자자들이 생각하는 쿼터제 반대의 이유는 갈 길이 다르다.

어느 영화인이 토크쇼에서 말한 대로, 영화인들이 거리로 나서는 것은 밥그릇을 챙기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쿼터제가 없어도 굶지 않을 것이며, 영화를 안 해도 먹고 살 궁리들을 저마다 가지고 있다. 더군다나 자존심 강한 한국 영화계가 스크린쿼터의 그늘 안에 있다는 건 더더욱 부끄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크린쿼터가 필요한 그들의 이유는 아직도 영화의 아편에 젖어 미래를 꿈꾸는 다음 세대를 위한 것이다. 만일, 이들이 설 자리가 줄어든다면, 한국 영화의 미래는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스탠리 큐브릭이나 알프레드 히치콕, 리들리 스콧, 구로자와 아키라 같은 장인들이 명작을 만들어오는 동안 우리는 겹치기 연출에 싸구려 문예에로영화나 만들어온 아픈 과거가 있음은 물론, 빈번한 표절의혹에 외국 작품 베끼기에만 연연해왔던 우리 영화계의 토대는 지금도 빈약하기만 하다. 그리고 이 약한 토대를 그나마 무너뜨리지 않게 해준 스크린쿼터의 도움 역시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미 판결이 나고 7월부터 쿼터제가 시행되는 순간부터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해 색다른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그 이유로 한국 영화계는 질적 성장을 이루는데 주력해야한다.


우선, 스텝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개선해야 하며, 극장 수익 구조가 몇몇 거대 자본가의 상업 영화로만 쏠리지 않도록 수평을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아무리 상영 일수가 반으로 줄었더라도 관객의 눈을 매료시킬 수 있는 질적 영화들이 많이 터져 나와야 하는데, 이는 우리 영화가 해외 영화제에서 각광을 받거나 <맨발의 기봉이>같은 감동모드의 영화들이 한국 관객들의 마음을 잔잔하게 울리는데도 크게 한 몫 할 것이다.

1958년 프랑스에서 누벨바그 운동이 일었을 때, 프랑스 영화계는 말 할 수 없는 정치적 혼란 속에 휩싸였다. 하지만, 이 혼란 속에서도 프랑스 영화의 질적 성장은 멈추지 않은 채, 장 뤽 고다르, 로베르 브레송, 루이 말, 프랑소와 트뤼포 같은 대가들을 만들어냈다. 한국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더 이상 쿼터제 같은 것에 연연하지 않고, <미션 임파서블3>같이 관객들의 눈을 자극할 수 있는, 그러면서 다른 어떤 헐리우드 영화에 뒤지지 않는 질적인 한국영화를 만들 수 있는 누벨바그 시대가 와야 한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힘, 그것이 한국 영화를 발전시킬 수 있는 커다란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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