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6.05.18 21:42 수정 : 2006.05.18 21:42

왜냐면 - 가정의 달, 진정한 가정의 의미 되새겨보아야

시묘살이는 아내와 자녀들의 고통과 상처가 담보된 것…개인적인 한 사람의 삶이 투영된 모습에서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그대로 감지된다.

최근 〈한겨레〉에서 ‘시묘살이’에 대한 두 개의 기사를 읽었다. 하나는 5월8일치 독자기자석에 실린 ‘산중에서 보낸 5년과 자식 도리’이며, 다른 하나는 ‘18도’ 섹션에 실린 ‘효 깨우쳐준 당신, 그립습니다’이다. 첫 번째 글의 주인공은 언젠가 방송에서도 다큐멘터리 프로에서 방영되어 알려진 유범수(5년 시묘살이)씨이며, 두 번째 인물은 박상근(3년 시묘살이)씨다.

이 두 분을 소개한 글에 대해 반론하거나 이들의 시묘살이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두 기사를 읽으면서 안타까웠던 점 몇 가지를 밝히고 싶다.

첫째, 언뜻 이 기사들은 부모에게 하는 효도는 아들만의 전유물인 것처럼 읽힌다. 또, 가족구성원에는 부모와 아들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남편, 아빠, 사위로서의 역할과 위치는 없다. 이분들이 시묘살이 하는 동안 두 분의 가족(특히 아내나 자녀들)이 겪었을 고통에 대해선 언급조차 없다.

둘째, 진정한 효도에 대한 점검이다. 세상 부모들의 공통적인 바람이 있다면 ‘지들끼리 오순도순 잘사는 것’일 것이다. 아들이 집 나와서 가족을 내팽개치고 몇 년씩 산속에서 혼자 밥 끓여 먹으면서 시묘살이 하기를 바라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그것이 ‘효도’라는 외피를 썼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사나 죽으나 부모 얼굴만 맞대고 살아야 한다는 식의 굴절된 부모상을 갖지 않은 일반적인 부모들의 바람은 자식들의 화목일 것이다.

셋째, 언론이 효의 진정한 의미를 제시하지 못하고 효도에 대해 왜곡보도하고 미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과 아버지의 시묘살이 도중 겪었을 아내와 자녀들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들의 ‘효’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느낌이다.

언젠가 유범수씨 시묘살이에 대한 내용이 텔레비전에서 방영되었을 때 필자가 담당 피디와 통화한 적이 있었다. 그는 프로그램의 주제가 ‘효’가 아닌 별난 인생을 사는 분을 소개하여 시청자들에게 생각의 여지를 주자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 방송에 비친 유범수씨의 아내와 딸과 장모의 모습에서는, 남편과 아버지와 사위를 시묘살이에 빼앗겨버린 가족의 상처와 고통, 분노와 체념이 고스란히 화면으로 전해졌다.

같은 부모인데 딸 가정 걱정으로 노심초사하는 살아 계신 장모의 가슴에 대못을 박으면서까지 돌아가신 부모의 묘를 돌본다는 사실이 과연 진정한 효도일까? 또한 감수성 예민한 시기, 5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자녀들이 아버지의 부재로 입은 상처와 상실감은 외면해도 되는 것일까? 또한 그 가정의 가정경제는 다른 집 남편이 와서 채워주기라도 한단 말인가. 아마도 돈 버느라 그 아내의 등은 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조선시대 열녀비처럼 시대에 귀감이 되는 인물인 듯 그분을 언론은 치켜세운 듯한 느낌을 받았다.


물론 한 남자가 남편, 아버지, 사위로서의 역할을 균형 있고 조화롭게 잘 해내면서 아들이란 위치에서 부모에게 효를 다한다면 유구무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시묘살이는 아내와 자녀들의 고통과 상처가 담보된 것이기에 그리 쉽게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말할 수 없으며, 그런 모습이 도리어 씁쓸하며 안타까움마저 들게 한다. 시묘살이라는 아주 개인적인 한 사람의 삶이 투영된 모습에서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그대로 감지된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가화만사성’은 가정의 의미를 집약한 용어 같다. 만가지 일을 잘되게 하는 화평한 가정을 위해선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부부연합, 부부중심, 부부평등이란 단어만큼 화평한 가정을 위해 중요한 단어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내와 남편, 남편과 아내가 가정의 중심이다. 사랑을 집착이라고 말하지 않듯 효 역시 집착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 없다.

유씨는 탈상을 마치면 산속에서 혼자 기거하는 할머니를 돌봐드릴 예정이라고 한다. 갸륵한 마음이다. 하지만 그 일 이전에 유씨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가정으로 돌아가 아내와 자녀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일이 아닐까? 또 노심초사하신 장모님께 큰절이라도 올려 마음을 어루만져 드려야 할 것이다. 할머니를 돌봐 드리는 일도 이번엔 아내의 의견을 물어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아내와 손잡고 함께 했으면 한다. 5월 가정의 달의 참뜻은 이런 데 있지 않을까?

차정미 /시인·전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출판부장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