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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5.18 21:39 수정 : 2006.05.18 21:39

왜냐면

전세계적으로 응원 현장에서자기나라 ‘국가’를 다른 방식으로 부르거나 아예 상업적인 목적으로 개사, 편곡하는 유례는 없다.

국제 스포츠행사가 치러질 때 가장 호들갑을 떠는 것이 바로 상업광고다. 요즘 대중매체를 볼라치면 다가올 월드컵을 찬양하기 위해 어느 곳이든 광기를 뿜어내듯 요란하다. 그런데 그 광기에서 특이한 점은 업종이 상이함에도 모두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애국심’이다. 그간 애국심에 무심했던 대중을 기업광고에 동참시키고 구매행위로 연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혹자는 국제행사가 경제적으로 잘 치러지기 위해서는 이런 상업광고주 개입은 불가피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개입은 ‘소비자’ 참여가 아닌 ‘시민’ 참여라면 불가피할 이유가 없다. 애국심과 상술의 찜찜한 결합이라면 ‘시민정신’으로 저지하는 것이 옳다.

얼마 전 가수 윤도현씨가 ‘애국가’를 월드컵 응원용으로 편곡해 대중에게 공개했다. 이는 현재 한 이동통신사에서 상업적으로 쓰이고 있다. 윤씨의 의도가 아니더라도 그의 애국가는 상업적 수단에 사용된 셈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런 현상에 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거나 친근하게 받아들인다. 전세계적으로 응원 현장에서 자기 나라 ‘국가’를 다른 방식으로 부르거나 아예 상업적인 목적으로 개사, 편곡하는 유례는 없다. 더욱이 이를 애국심이라 착각하는 경우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국제행사에서 부를 우리 애국가를 시대에 뒤떨어진 멜로디라거나 응원 열기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고쳐 부르고 있다.

몇년 전 미스코리아 출신 탤런트 이승연씨는 ‘군대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을 전세계에 고발하고자’ 누드 화보집을 내기로 발표했다. 사람들의 반응은 찬반양론으로 뜨거웠지만 비판적 반응이 압도적이었다. 어찌 할머니들의 아픔을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씨는 같은 상업예술인인 윤씨처럼 자신의 능력껏 애국심을 발휘하려다가 결국 큰 봉변을 당했다. 차이가 뭘까? 필자는 상업적 수단으로 봐서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본다. 오히려 이씨가 자신의 방식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사죄한 눈물이 사심 없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승연씨는 한동안 방송에 얼씬도 못한 반면, 윤도현씨는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대중적 열기를 돋워주겠다는 명분으로 ‘애국가’를 서구 유행의 카니발적 음악 장르로 변형해 불러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가? 어떤 형식, 어떤 방법으로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가’에 상업성이 침투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태극기가 성조기보다 꽉 찬 느낌이 없다고 별을 그려넣거나 일장기처럼 깔끔치 못하다고 ‘건곤감리’를 뺄 수는 없다. 그런데 한낱 상업적 목적으로 이상하게 바뀐 애국가에 우리는 왜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 걸까? 우리 국민들의 사고가 언제부터 이렇게 ‘쿨’했는가? 오히려 정말 ‘쿨’하게 굴러가야 할 우리 사회의 과제들이 반목으로 지체되고 있는 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문윤수 /목원대 광고홍보언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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