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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5.18 17:41 수정 : 2006.05.18 17:45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텔레비전 광고 카피다. 나이는 그 사람의 인격과 실력을 가늠하게 해주는 중요한 지표 중 하나임에 틀림없지만, 숫자가 그 사람이 가진 모든 것을 말해줄 순 없다는 뜻일 게다.

숫자의 속성은 그런 것이다. 숫자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약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오히려 실상을 왜곡하는 흉기가 될 수도 있다.

며칠 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국가경쟁력 지수’가 발표됐다. 우리나라가 지난해 29등에서 9단계 떨어져 38등이 됐다고 각 언론이 정부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매년 있는 일이지만 예년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몇몇 신문을 빼고는 이것 때문에 나라가 곧 망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숫자가 정부 비판의 든든한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여전한 모양이다. 이 지수가 기업인 대상 설문조사 결과에 상당부분 의존하고 있다는 전제 아래 ‘정부가 심각하게 반성할 것’을 촉구하는 정도니까. 이제 한 반년 후면 세계경제포럼(WEF)의 ‘글로벌 경쟁력 지수’가 또 발표될 텐데, 그 때는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하다. 지난해에는 IMD 지수가 여섯단계, WEF 지수가 열두단계나 뛰어 올라 정부관계자들을 즐겁게 해주지 않았는가? 이런 얘기를 꺼내는 것이 IMD나 WEF의 경쟁력 지수를 무시하자는 건 아니다. 이 두 기관들은 이 일에 관한 한 세계 어느 기관보다 공신력을 갖고 있다. 게다가 한 나라가 먹고 사는 데 필요한 내용을 거의 다 망라해 비교평가해 주니 우리에겐 더 없이 고마운 일이다. 그렇지만 매번 갖게 되는 느낌은 우리가 이 지수들에 너무 심하게 휘둘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도대체 우리는 왜 그렇게 이 숫자에 집착하는 것일까? 정말 이 숫자들이 우리 능력을 정확하게 나타내주는 척도이긴 한 것일까? 10년째 제자리 걸음을 하던 1인당 국민소득이 환율 덕택에 1만달러를 훌쩍 넘어버렸고, ‘골드만 삭스’는 우리 경제가 2050년께에는 미국 다음으로 세계 2위가 될 것이라는, 너무 좋아서 자다가도 웃지 않을 수 없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이런 일들은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우리가 스위스의 조그만 연구소가 생산해내는 숫자에 매년 일희일비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 책임이다. 우린 이 숫자들의 약점, 강점을 모두 잘 알고 있으면서도 경쟁력 향상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지 않고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기 위한 정쟁의 무기로 사용한다. 일부 정부 비판론자들은 정부를 비판하기 위한 효과적인 도구로 쓰고, 정부는 또 정부대로 치적에 대한 공감대가 부족한 상황에서 궁색한 자화자찬용으로 사용한다. 이 판에 국민만 어지러울 뿐이다. 자존심 상하는 일은 둘 다 스스로의 논리로 진검 승부를 겨루지 못하고 어설프게 ‘외국인의 손을 빌어’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는 일이다. 이젠 우리 스스로의 논리와 실력으로 경쟁하고 비판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우린 우리 스스로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실력있는 지도 모른다.

조병구/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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