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5.11 21:08
수정 : 2006.05.11 21:08
왜냐면
고발 내용과 고발자의 이름을 유출하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될 터인데 하물며 감사청구서를 송두리째 피감대상에게 넘기다니…!
필자는 지난 4월18일 교육부와 감사원에 부산시교육청과 다수의 고등학교들을 고발했다. 이유는 대다수의 일반계 고등학교가 교육부의 지침을 어기고 출석부를 허위기재해 가며 일과 중에 사설 모의고사를 실시했고 교육청은 이를 방조하였다는 것이었다. 이 과정의 여러 불법성을 철저히 조사해 달라는 요청도 당연히 덧붙였다. 그런데 사설 모의고사 실시 불가 지침을 해마다 시달하고 있는 교육부는 한 달이 가까워 오도록 아무 회신을 하지 않아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해괴한 것은 감사원의 태도다. 필자는 감사 요구를 하면서 분명히 그 대상에 부산시교육청을 포함시켰고 업무 담당자인 어느 과장의 이름과 직책, 그리고 그의 문제발언까지도 명기하였다.
4월24일 날아든 감사원의 답신은 나를 아연실색하게 했다. ‘부산시교육청이 감사할 사안이어서 그리로 이첩했다’는 것이었다. 이럴 수가 있는가? 감사를 해 달라고 요청한 피감대상에게 감사를 의뢰하다니…. 부산시교육청의 회신은 의외로 빨리 도착했다. 5월3일자 소인이 찍힌 그 회신의 내용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한마디로 자신들은 교육부의 지침을 지키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으며 사설 모의고사를 치른 학교들도 아무 잘못이 없다는 두루뭉술한 면피성 답변이었다. 필자가 요구한 공문서 허위기재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고 리베이트 관련 불법행위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냥 없었다고만 통보해왔다.
필자를 더욱 경악하게 한 것은 그 문서의 결재라인이었다. 필자가 이름까지 밝혀 조사를 요구했던 그 과장이 답변서 작성의 중간책임자로 되어 있었다. 그는 필자의 감사청구서를 감사원으로부터 넘겨받고 또 답변서에 결재를 하면서 어떤 심정이었을까?
이것은 명백한 직무유기다! 고발자의 신분을 보호하는 것은 감사기관의 최소한의 의무다. 고발 내용과 고발자의 이름을 유출하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될 터인데 하물며 감사청구서를 송두리째 피감대상에게 넘기다니…!
엄격한 교육과정에 의해 운영되는 공교육기관인 학교에서 정상 일과 중에 사설 모의고사가 버젓이 치러지는 이런 파행이 더는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 그 과정에는 금품수수와 공문서 허위기재의 의혹도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이 문제의 궁극적 해결책은 대학입시제도의 근본적 개혁이다. 하지만 근본적 해결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고3 학생들은 당장 수능의 불안감에 쫓겨 정기적인 자기점검을 현실적으로 요구한다면, 교육부와 교육청은 그 요구를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해결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을 해야 한다.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를 빙자하여 탈법과 비리를 방조할 것이 아니라 법 테두리 안에서 가능한 교육적 대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이와는 별도로, 비교육적이고 불법적인 여러 관행들에 대해서는 정당한 법적 조처가 이루어져야 한다. 감사원이든, 교육부든, 교육청이든 음습한 ‘현실론’ 속으로 도피해서는 안 된다. 감사원은 분명히 답해야 한다. 피감대상에게 감사권을 넘긴 이유가 무엇인지를, 다른 감사도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는지를. 그리고 부산시교육청의 아무 내용 없는 답변에 대해 국내 최고의 감사기관으로서 어떤 조처를 취할 것인지를.
고호석/전국교직원노동조합 부산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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