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제약회사에서 병원에 뒷돈을 주는 이상, 약값은 싸질 수 없다…대체조제가 수월해지거나 성분명 처방이 법제화할 경우 약 선택의 주도권이 약국으로 넘어오면서 약값은 지금보다 저렴해질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약국에서 일한 지 3년 된 전산원이다. 비록 약사는 아니지만, 4월28일치 <한겨레> 31면에 실린 대한의사협회 광고를 보고 어이가 없어 한마디 쓴다. 최근 생동성 시험결과가 조작된 복제약(카피약)들이 적발되었다. 국내 제약회사들이 시험기관과 짜고 효능이 떨어지는 카피약을 원본(오리지널약)의 그것과 다름이 없다고 조작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의사협회가 낸 광고를 보면 이 사건의 책임을 뜬금없이 약사한테 돌리고 있다. 아니, 부정을 저지른 것은 제약회사와 시험기관인데, 왜 약사들의 대체조제가 문제였다는 주장이 나오는지 알 수가 없다. 아무리 뛰어난 약사라 해도 생동성 시험결과가 조작된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식약청의 관리 아래 이름있는 제약회사에서 생산·공급하는 약이면 당연히 믿을 만한 제품이라 생각하고 쓰는 것이지, 약사가 시험기관을 직접 오가며 약의 효능을 확인하고 제약회사와 시험기관 사이에 유착관계는 없는지 수사라도 해야 한단 말인가? 광고에는 “약사들이 의료비 절감을 주장하며 시행해 온 대체조제 뒤에는 생동성 시험의 조작이 숨어있었다”고 써 있다. 내 어머니도 얼마 전까지 ‘의사의 처방을 받아’ 이번 카피약 파동의 한자락을 장식한 ㄷ제약의 골다공증 약 ‘ㅍ’을 드셨다. 그럼 이 약을 처방한 의사는 대체 뭔가? 의사 역시 효능이 떨어지는 약인 줄 모르고 처방했을 터이고, 약사는 처방대로 약을 내준 것뿐인데 왜 약사를 이 사건의 주범인 양 몰아가는 것인가? 내 어머니의 경우를 예로 들어 만약, 약사가 ‘ㅍ’ 대신 오리지널약으로 ‘대체’를 해줬다면 결과적으로 어머니는 효능이 떨어지는 약을 복용하지 않게 된 것인데, 그렇다면 그 약사한테는 상이라도 줘야하는 거 아닌가? 이번 카피약 효능 조작사건의 책임은 누가 봐도 제약회사와 시험기관, 그리고 이 둘을 철저히 관리·감독해야 할 식약청에 있다. 아마 한겨레를 비롯한 각 일간지에 광고를 냈을 의사협회도 이런 사실을 잘 알 것이다. 그런데 왜 약사한테 책임을 돌리는 광고를 냈을까? 의사협회에서 주장하고 싶은 건 바로 ‘대체조제 및 성분명 처방의 정책 철회’일 것이다. 대체조제나 성분명 처방은 말 그대로 의사가 처방한 특정 상표 약 대신 성분이 똑같은 다른 회사의 약으로 조제 또는 처방하는 것이다. 이 정책이 법제화할 경우 약의 브랜드를 선택하는 권한은 병원에서 약국으로 넘어간다. 그러면 병원이 제약회사로부터 받아온 짭잘한 채택료(리베이트) 수입이 사라진다.(이를 전혀 받지 않으시는 의사분들께는 정말 죄송한 발언이다) 채택료는 특정 약을 처방하는 대가로 제약회사한테 받는 뒷돈이다. 제약회사에서 병원에 뒷돈을 주는 이상, 약값은 싸질 수 없다. 광고비가 상품의 소비자 가격에 포함되는 것처럼 결국엔 이것도 환자가 부담하는 셈인 것이다. 물론 약을 선택하는 주도권이 약국으로 넘어가면 제약회사는 약국을 상대로 공세를 펼칠 것이다. 그런데 약국은 약사의 돈으로 약을 사들여서 약을 지어주고 나중에 보험공단으로부터 돈을 받는다. 쉽게 말해 외상 장사다. 약사로선 믿을 수 있는 제약회사들의 약 중에서 값이 1원이라도 싼 약을 선호하게 된다. 환자들도 약값이 단돈 100원이라도 싼 것을 좋아한다. 약국에선 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면서도 효능이 좋은 약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대체조제가 아주 수월해지거나 성분명 처방이 법제화할 경우 약 선택의 주도권이 약국으로 넘어오면서 약값은 지금보다 저렴해질 거라고 생각한다. 대한의사협회가 정말 국민을 위한다면 어떤 명분으로든 대체조제 및 성분명 처방 철폐를 부르짖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사가 나서서 이를 주장해야 한다. 병원 처방전을 들고 병원 근처가 아닌 지역에서 약을 지으려다 몇 군데 약국을 다녀도 약이 없어 약을 조제하지 못한 경험을 한 환자들도 있을 줄로 안다. 이는 정말 약국에 약이 없어서 조제를 못한 게 아니고 처방전에 적힌 특정 상표의 약이 없어서 조제를 못한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열에 아홉, 처방전 한쪽에 ‘대체조제 불가’라는 문구가 찍혀 있었을 터. 대체 누구를 위한 대체조제 불가란 말인가?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번 카피약 파동의 주범은 약사가 아니다. 대한의사협회는 식약청과 제약회사와 시험기관이 책임져야 할 일을 가지고, 에둘러서 대체조제 및 성분명 처방 철폐의 근거로 내세우는 논리 오류를 더는 범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욱영/서울 성북구 동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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