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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4.20 18:28 수정 : 2006.06.08 12:02

왜냐면

향후 십년 또는 이십년, 농민과 농토가 사라진 이 땅에 외국의 거대자본이 식량을 무기화한다면 그때 대한민국은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가?

20여년 전 중학생일 때 농업 과목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1970~80년대를 전후로 중동의 산유국들이 석유파동을 일으키며 자국의 이익을 꾀했듯이 앞으로는 농업을 바탕으로 한 서구의 거대자본이 쌀과 옥수수 같은 식량을 무기화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그 때는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20여 년이 흐른 지금, 불행하게도 그 선생님의 예언은 비교적 정확히 맞아 떨어지고 있는 듯하다. 어느 틈엔가 우리의 식탁은 외국 농산물이 차지해 버렸다. 대형 할인마트는 물론 동네의 구멍가게에서조차도 국산 농산물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심지어 5일마다 한 번씩 열리는 산간 시골마을의 재래시장에서도 값싼 수입 농산물이 국산으로 둔갑한 채 팔린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대한민국에 농토와 농부는 있는데 언제부턴가 농산물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요즘 이른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관한 논쟁이 뜨겁다. 정부는 협정의 당위성을 ‘비약적인 수출 증가’로 강조한다. 일반적으로는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면 한국산 공산품의 경쟁력이 일정 부분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협정을 통한 관세인하가 미국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으로 이어진다고는 누구도 쉽게 장담할 수 없다. 최근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캐나다와 멕시코의 최근 미국 시장 점유율 품목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반면 협정을 맺지 않은 중국은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미국 시장에서 협정 체결국과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았다고 한다. 협정이 타결되면 농업을 비롯한 취약 산업은 단번에 무너져 내릴 것이다.

경쟁력 있는 품종 개량이 최우선이지만 그것 또한 단기간에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쌀이 개방되면 농촌은 공동화하고 말 것이다. 이것은 비단 농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향후 십년 또는 이십년, 농민과 농토가 사라진 이 땅에 외국의 거대자본이 식량을 무기화한다면 그때 대한민국은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가? 광우병에 걸린 소와 유전자 조작된 콩과 쌀을 먹어야 하나? 다시 농사를 지으면 된다고? 이미 황폐화한 농촌에서 무엇을 바랄 수 있을 것인가?

미국과의 무역 협정을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다. 세계무역기구(WTO)처럼 강제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칠레와는 2년이 걸렸고 5년을 끌었던 일본과는 아직도 협상이 타결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정부는 세계에서 가장 큰 무역시장인 미국과의 협정은 십 개월 안에 끝내려고 한다. 필자는 그런 정부와 당국의 처사를 이해할 수 없다. 비단 농업뿐만이 아니다. 전자나 조선 등 일부 분야를 제외하면 제대로 경쟁력 있는 분야가 없다. 지금 정부가 맺으려고 하는 미국과의 협정은 누가 봐도 무리다.

김인철/경기 성남 푸른학교 교사·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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