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철도 역시 국가 기간산업이다. 왜 원천적으로 국가가 지고 가야 할 짐을 철도 직원에게만 가혹하게 떠넘기는지, 이 빚이 결국은 훗날 국민이 지고 가야 하는 짐은 아닌지 진실로 되묻고 싶다. 철도파업 후유증으로 현장이 어수선하다. 지난 1일 노사가 모처럼 손을 맞잡고 안전-고품격의 서비스로 국민신뢰를 회복하고 상생의 기차바퀴를 함께 굴려가자는 약속을 했다. 그러나 현장 직원들의 마음은 무겁다. 이런저런 불만들을 누른 채 ‘공익성과 이윤추구’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 위해 다시 기차는 달린다. 나는 만 20년 동안 오직 철길만 달려온 기관사다. 그러나 철도 빚 문제를 보는 일부 왜곡된 시각에 대한 답답한 마음을 누를 길 없어 나름대로의 생각을 전하고자 한다. “철도 자구노력도 없이 1년 만에 빚 갚아 달라고 손 벌려 …” “철도 부채를 고스란히 국민부담으로 전가하려는 …” 얼마 전 <조선일보> 사설의 한 대목이다. 기막힌 표현이다. 파업 내내 언론의 한결같은 토끼몰이식 냉소적인 논조를 읽으면서 나는 가슴을 떨었다. 철도 빚의 진정한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알면서도 천편일률적으로 써내려가는 논객들의 이중성에 가슴을 떨었고, 철도원에 함부로 돌을 던지는 언론의 횡포에 또 한 번 상처를 입었다. 지난해 4월1일 국민의 여망을 안고 한국고속철도(KTX)는 힘차게 출발했다. ‘꿈의 300킬로미터 질주’라는 슬로건 아래 국가의 위상도 한 단계 높아졌다. 그러나 그 화려함 뒤에는 ‘부채철’이라는 어두운 그림자도 함께 출발하고 있었다. 15년 동안의 부실시공, 잦은 설계변경, 원가계산 오류 등으로 빚은 눈덩이처럼 불었다. 정권교체기마다 그 심각성이 누누이 지적되었지만 누구 하나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 그 결과 10조원이라는 엄청난 빚을 우리 3만2천 직원의 ‘일류공사 건설’이라는 희망과 맞바꾸었다. 빚의 절반은 한국철도시설공단으로 넘어갔지만, 철도는 연 5천억원이 넘는 돈을 선로사용료란 명목으로 시설공단에 지급했다. 시설공단은 수익을 내는 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이 선로사용료로 빚을 갚아나간다. 결국 시설공단의 빚 역시 철도가 갚아주는 꼴이 됐다. 이러한 모순 속에서도 정부는 언제나 공익성과 이윤추구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라고 요구한다. 경영 정상화를 위해 지금 철도에서는 지사개편, 인력재배치 등 전방위 자구노력을 하고 있다. 그야말로 뼈를 깎는 고통의 시간을 견디고 있다. 직원들 대부분은 경영 정상화의 취지는 이해하면서도 그러한 자구노력에는 흔쾌히 동의하지 않는다. ‘돈도 벌고 공익성도 확보하라’는 이율배반적인 고리에 묶여 희망 없는 철길을 달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철도에는 백원을 벌기 위해 천원을 투자해야 하는 곳이 많다. 적자 선로를 걷으려 하면 공익성 때문에 안되고, 적자 역을 폐쇄하려 하면 서민의 이동권리를 막는다면서 지역의원이 와서 말린다. 한마디로 “너희들이 알아서 기관차도 사고 기름도 사고 선로도 깔아서 공익성 유지하고 이윤창출도 하면서 국가의 대동맥 역할을 충실히 해달라”는 것이다. 고속철도 빚까지 덤으로 끼워 넣어 직원들을 더욱 주눅들게 한다.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 정부와 언론에 묻고 싶다. 대한항공이 회사 돈으로 영종도 새공항 건설까지 해서 비행기를 띄우는지, 도로공사가 고속도로 통행료를 걷어서 직원들 월급 주고 고속도로까지 건설하는지를. 그들은 국가가 건설해준 시설을 유지·운영만 하면 된다. 국가 기간산업이기 때문이다. 철도 역시 국가 기간산업이다. 왜 원천적으로 국가가 지고 가야 할 짐을 철도 직원에게만 가혹하게 떠넘기는지, 이 빚이 결국은 훗날 국민이 지고 가야 하는 짐은 아닌지, 정치권과 언론은 무엇 때문에 짐짓 모른 체 시치미를 떼며 둑 터질 날만 기다리는지를, 진실로 되묻고 싶다.철도 빚 문제가 속으로 곪아터져도 역대 최고경영자들은 문제는 덮어둔 채 국회에서 장밋빛 미래를 펼치는 것을 보아왔다. 솔직히 못마땅했다. 알면서 덮어두는 것은 책임 있는 경영진의 자세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 직원들은 현 철도공사 사장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적어도 있는 그대로를 솔직히 이야기할 수 있는 분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집에 빚이 있다면, 더욱이 그 빚이 호박덩이처럼 떠안은 것이고 평생을 죽자살자 일해도 못 갚을 빚이라면 어찌 밝은 미래를 꿈꿀 수 있겠는가. 원천적으로 희망이 봉쇄된 일터에서 어찌 최상의 대국민 서비스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두 마리 토끼 중 한 마리만이라도 확실히 잡고 싶다. 일류공사, 흑자기업의 꿈을 반드시 이루어 우리도 그 열매를 국민과 함께 기쁘게 나누고 싶다. 철도의 공공책무를 다하기 위해 파생된 나머지 한 마리 토끼는 정부가 잡아주기를 간곡히 바란다. 김만년/한국철도공사 일산승무사무소 기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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