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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4.13 23:20 수정 : 2006.04.13 23:20

왜냐면 - 검시관법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하며

우리 유가족들은 군대에 보낸 자식들이 더는 싸늘한 주검으로 나타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타살이 자살로 바뀌어서…

백발 노인이지만 날마다 국회 앞에서 국회의원들에게 머리 숙여 인사합니다.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눈도 침침하지만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을 편히 보내기 위해 국회의원들의 관심을 부탁드리며 간절히 머리 숙여 인사합니다.

참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무심한 마음들만 강물처럼 흘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법의학회에서 귀한 엽서 한 장을 받았습니다. 대검찰청 회의실에서 15일 오후 1시30분 ‘검시제도에 대한 고찰 학술토론회’를 한다는 내용입니다. 늦은 감은 있지만 아주 반가웠습니다. 왜냐면 우리나라의 검시제도가 제대로 확립되어 있었다면 그토록 많은 의문사들이 의문사로 남지 않았을 것이라는 걸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과정에서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들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는 2003년부터 검시제도 법률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 입법을 추진해 왔습니다. 그 일환으로 우리 의문사유가족대책위 열네 사람은 법의학 발전을 돕는 마음에서 우리가 숨진 뒤 주검을 기증하기로 서약한 바 있습니다. 우리의 몸을 통해 법의학이 제대로 그 기틀을 세워 다시는 억울한 죽음이 없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열린우리당 의원 145명의 서명을 받아 당론으로 국회에 낸 법안이 정당 사이 이해관계로 우선순위에서 밀려 처리되지 못한 채 망령이 되어 구천을 맴돌고 있습니다. 혹시나 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국회 앞에서 백발 노인들이 하소연하지만 이달 임시국회에서도 역시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세상에서 사람의 생명보다 더 고귀한 것이 무엇이라고 우선순위에서 밀린단 말입니까?

우리 선조들은 이미 560여년 전 조선 초기부터 <무원록>을 편찬해 변사체가 발견되면 3심제를 적용해서 죽어간 영혼들의 한이 남지 않도록 했는데, 일제 치하와 군부독재 체제를 거쳐오면서 검시제도 자체가 사라졌습니다. 현재 국회 법사위에 ‘검시를 행할 자의 자격 및 그 직무 범위에 관한 법률안’이 계류 중인데, 이 법이 당장 통과되어도 올바른 검시제도가 만들어지려면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왜냐면 국내에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 검시 전문인력을 새롭게 양성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그 실효가 나타나려면 최소한 10년 정도는 흘러야 할 겁니다. 이는 2년에서 10년 가까이 자식들을 구천에서 저세상으로 보내지 못하고 있는 우리 유가족들은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더는 이 법이 미뤄져서는 안 됩니다. 우리 유가족들은 군대에 보낸 자식들이 더는 싸늘한 주검으로 나타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타살이 자살로 바뀌어서 부모의 몸에 한이 쌓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우리 백발노인들은 국회 앞에서 머리 숙여 관심을 가져달라고 하소연합니다. 의문사법이 제정된 지 어느 새 7년이 흘렀습니다. 머리카락은 더 희어지고 슬픈 주름살은 얼굴만이 아니라 온몸에 절규로 새겨졌습니다. 이제는 무릎이 너무 아파 일인시위도 힘이 듭니다. 지난 역사를 올바로 청산기 위해서라도 이번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켜 억울하게 숨져간 영혼들을 거두어 주시길 간절하게 바랍입니다.

허영춘/의문사 유가족대책위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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