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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4.13 23:17 수정 : 2006.04.13 23:17

왜냐면

주민등록번호가 없어도 잘 사는 나라가 대부분이다. 주민등록제는 시민들을 ‘위한’ 제도라기보다도 시민들에 ‘대한’ 조처로 보인다. 사람에 대한 정보를 숫자로 떼어내면 체제에 의해 악용되기 십상이다.

최근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주한 외국인 수는 한국 총인구의 1%에 이른다고 한다. 10년 전보다 2배 이상, 40년 전보다 거의 4배 증가한 셈이다. 몇 년 전부터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도 (외국인)주민등록증 및 번호를 소유할 수 있는, 어느 나라에서도 누릴 수 없는 명예(?)를 가지게 되었다. 물론 이른바 ‘불법체류자’를 제외하고 말이다. 효과적인 행정을 위한 이 개혁적인 변화는 관계당국이 정보기술 강대국에 맞게 인터넷상에 외국인 주민등록번호를 (내국인)주민등록번호처럼 사용할 수 있기 위해 안간힘을 써서 가능하게 한 일이다. 정부부처 중심으로 웹 담당자(마스터)에게 열심히 홍보하고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이 확실하다. 덕분에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수없이 많은 한국 인터넷 사이트 가운데 적어도 일부분에 회원으로 가입해서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외국인도 내국인과 같은 대우를 받게 된 셈이다. 프랑스 혁명의 세 구호를 한꺼번에 충족한 것이 아닌가? 자유, 평등, 박애! 그러나 과연 그런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먼저 자유를 따지면 미셸 푸코가 말하는 이중의 주체(sujet)에 대한 문제제기가 떠오른다. 그에 따르면 주체는 주어져 있는 규범에 복종해야 자율적인 주체가 된다. 즉, ‘주인’의 말을 잘 들을 때만이 자유로울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그 자율적인 주체의 자유는 딱 자기 주인의 마음까지다. 이미 마르크스가 노동과 관련해서 이 중요한 기능을 파악했다. 그가 말하는 해방은 노동으로부터 해방이다. 주한 외국인은 자유를 획득하게 된 건가? 인터넷에서 잠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외국인 등록번호를 발급받기 때문에 온라인 장보기, 회원가입, 은행거래 등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된 만큼 자유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그 자유의 값을 따져보자. 주한 외국인도 내국인과 같은 고민을 하게 된다. 그것은 ‘사생활 보호’라는 부분이고, 또 국가를 비롯한 잠재적인 감시와 통제(처벌)라는 ‘다모클레스의 칼’이다.

평등. 그래도, 적어도 자랑스러운 내국인과 같은 대우를 받는 것이 아닌가? 이것도 좀 더 자세히 조명할 필요가 있다. 본인의 웹상 경험으로는 외국인 등록번호를 기입해 (내국인)주민등록번호와 똑같이 사용할 수 있는 사이트는 아직까지 매우 적다. 웹 담당자가 시간을 내서 추가적인 프로그래밍까지 다 해놨다고 해도 반드시 되는 것은 아니다. 아예 안 되는 경우도 있지만, 예컨대 얼마 전에 서울시에 민원신청을 하려고 했을 때 요구 항목을 다 채워넣자 다음과 같은 ‘축하’ 메시지가 떴다. ‘회원가입 축하합니다! 외국인 등록에 관련해서 해당 서류를 보내주신 후부터 서류 검토는 3~4일 걸립니다.’ 할 말을 잃었다.

박애. 사람을 번호로 대신하는 것은 인류애와 멀다. 외국인 등록증 번호의 뒷자리는 ‘5’로 시작하니까 ‘1 아니면 2’라는 남녀차별 구도에서 벗어났지만, 그 번호도 국가의 서열에 따라 배분되는지도 모르니 환영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그리고 실은 주민등록번호가 아예 없어도 잘 사는 나라가 대부분이다. 주민등록제는 시민들을 ‘위한’ 제도라기보다도 시민들에 ‘대한’ 조처로 보인다. 꼭 국가에 의한 인간 통제라고까지는 해석하지 않더라도, ‘기회가 도둑놈을 만든다’는 말처럼 일단 사람에 대한 세밀한 정보를 그 사람으로부터 숫자로 떼어내면 그 번호가 체제에 의해 의도되지는 않더라도 악용되기 십상이다.

외국인 등록번호는 오늘날의 국민국가가 존재하는 한 피할 수 없는 행정의 문제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명적인 이 문제를 될 수 있는 대로 완화시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보기술 혁명의 나라인 한국만큼 훌륭한 전자행정제도를 운영하는 나라가 어디에 있겠는가? 한국은 세계적으로 인터넷 접촉, 배포, 사용 등에서 최고 수준인데, 외국인 등록번호를 왜 이렇게 허술하게 관리하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최근 들어 대체번호로 인터넷에서 신분확인을 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보이는데, 대체하더라도 ‘그놈이 그놈’에 불과하다. 웹상에서는 대체번호가 없는 내국인은 존재하지 않는 사람(외국인?)으로, 외국인 등록번호가 있는 외국인은 2급 인간(내국인?)으로 대우하는 실정이다.

하네스 모슬러/독일인·서울대 정치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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