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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4.03 21:29 수정 : 2006.04.03 21:29

왜냐면

미국은 한국민들을 향해 강압적인 결정들을 함부로 내리거나 처신한다. 어정쩡한 지식 발쇠꾼들이 한국 지식사회 도처에 깔려 있으니까 이제는 마음대로 한국을 억눌러도 된다고 생각하는 꼴이다.

나와 너, 또는 이 나라와 저 나라 사이에는 언제나 발쇠꾼이 있게 마련이다. 발쇠꾼, 샛꾼, 세작(細作), 간자(間者), 밀정(密偵), 스파이 따위로 불리는 이 밉상은 여러 문학 작품에서나 실제의 삶 속에서 만나게 된다. 그 존재 자체가 사람살이 바탕에서 버림받은 천격의 인간 쓰레기이기 때문에 그들 행동은 가차가 없고 무자비하다. 특성상 자기 성찰이 없는 남의 노예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이 밉상 발쇠꾼을 경멸하여 멀리하고자 한다. 그런 사람에게 걸리면 감쪽 같이 해꼬지를 당하게 되어 있다. 박경리의 <토지>에 보면 숨죽이며 독립운동을 실행하던 사람들 뒤를 캐며 그림자처럼 따라 붙는 무서운 발쇠꾼이 있어서 여러 인물들이 늘 경계를 늦추지 못한다. 이름 하여 김두수. 밀정, 발쇠꾼, 일본 경찰 끄나풀. 그런 존재는 사람들을 마음 졸이게 하고, 그 삶의 끝을 못내 궁금케 한다.

한국의 현대 문학사 앞 쪽에는 이런 ‘지식 발쇠꾼’들이 있었고, 일본인 정부는 이런 샛꾼들을 기르려고 압력을 넣어 조선 청년들을 관비 유학생으로 뽑아 조선 정부 비용으로 일본에 유학하게 하였다. 정한론을 공공연하게 주장하던 후쿠자와 유키치란 자가 만든 경응대학에 처음 간 유학생들이 많이 배치되어 뭔가를 배웠다는 기록이 있고, 이 대학교에는 아직도 조선 정부에서 미납한 그들의 등록금 및 생활비 기록이 남아 있다. 이런 발쇠꾼 양성은 제국주의 야심을 지닌 모든 나라가 다 그런 짓을 한다. 1904년도엔가 일본에 간 관비 유학생 출신으로 현대 문학사 초창기에 드러난 첫 지식 발쇠꾼이 바로 이인직이다.

이인직을 가리켜 “하나의 혜성이 나타났다”고 김동인은 썼다. 1900년대 초창기 한국 현대문학은 이런 발쇠꾼들로부터 시작되었다. 발쇠꾼들이 하는 일은 적국에, 아니 집어삼키고자 하는 나라에, 몰래 들어가 요충지를 알아내어 자기 소속 국가에 정보를 보내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요충지를 직접 파괴하거나 요인암살, 그 나라 국민들이 믿는 믿음체계의 상징물들을 부셔내는 관념 바꾸기에 온 힘을 기울인다. 영국 비밀 발쇠꾼 007 연작에 보면 멀끔하게 생긴 비밀 요원이 남의 나라에 들어가 갖은 수단을 다 동원하여 목표한 요소를 파괴하는 일에 성공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막판에 덤으로 미인과 정사를 벌이는 일, 아주 우스꽝스런, 발쇠꾼에게 주는 당근 이야기도 빼지 않는다.

이인직의 소설 <혈의 누>나 <치악산>은 그 내용이, 아주 음험하게도, 일본에 의해서만 한국의 모든 문제해결이 이루어진다는 결말로 끝냄으로써 한국인의 자기 정체성을 파괴하려는 목적으로 씌어졌다. 이광수의 <무정>의 남자 주인공 이형식 또한 신여성 후보 김선영에게 영어를 가르치러 가는 이야기로 작품을 시작하고 있다. 한국인이 믿고 살 길을 일본으로 여겼던 눈길이 영어 쓰는 미국으로 바뀌는 시작인 셈이다. 지식 발쇠꾼들은 그 행동의 범위가 넓고 요령이 교묘해서 여간해서 그 정체가 잡히지 않는 특징을 지닌 존재들이다.

지난 1월 ‘우리말로 학문하기’ 제10회 집담회에서 발표한 논문에서 한 철학자는 서울대학교 교수 가운데 90% 이상이 미국 박사학위 출신이라는 통계를 인용하였다. 아마도 유수한 한국 대학교 교수들의 출신성분을 보면 틀림 없이 미국 대학교 박사학위 출신이 가장 높은 비율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세계에 이런 나라가 없다는 것이 그의 발언 요지였다. 미국은 그런 점에서 한국인 발쇠꾼 키우는 데 할 일을 다 한 셈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한국민들을 향해 강압적인 결정들을 함부로 내리거나 처신한다. 어정쩡한 지식 발쇠꾼들이 한국 지식사회 도처에 깔려 있으니까 이제는 마음대로 한국을 억눌러도 된다고 생각하는 꼴이다. 발칙스럽고 얄팍한 미국의 우방정책이 그저 실망스럽고 불쌍해 보일 뿐이다. 큰 나라답지 못한 행동으로 나오는 이유가 너무 뻔해 보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발쇠꾼들이다. 이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나라는 점점 작아지고 가벼워질 수밖에 없다. 또 하나는 그런 발쇠꾼들을 남의 나라에 놓아 날뛰게 하는 나라 또한 천박해진다는 점이다. 한국에는 지금 아주 많은 발쇠꾼들이 발호하여 나라가 엄청 가벼워졌다고 나는 판단한다.

정현기/문학평론가·우리말로학문하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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