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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4.03 21:27 수정 : 2006.04.03 21:27

왜냐면

누군가 자신의 행동을 낱낱이 감시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깨끗한 사회를 만들어 가자는 목적에서 벗어나 ‘빈대를 잡자고 초가를 태우’는 어리석음…

‘파파라치’란, 유럽에서 유명인사의 개인 사생활에 접근하여 특종 사진을 노리는 전문 사진사를 일컫는다. 1997년 8월 영국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이들의 카메라를 따돌리려다 참변을 당했을 때, 세상은 그의 숨겨진 사실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그를 사고로 숨지게 한 사람에 대해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남의 단점을 밝혀 경제적 이득을 취하려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이 사람들의 보편적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작금 우리나라에도 파파라치가 급격히 늘고 있다. 최근 보도를 보면, 서울 강남의 한 파파라치 양성 학원에서는 2주를 교육기간으로 매기마다 150명이 배출된다고 한다. 전국에 이런 학원이 20여 곳이니 1년이면 수만명의 감시자가 생겨난다. 또 이 제도가 시행된 지 5년 사이에 신고 대상도 63가지로 늘어났다. 일회용 봉지 사용부터 선거사범 신고까지 많게는 1천만원의 포상금도 있다니, 단 한번의 신고로 웬만한 직장인의 월급 서너 배를 받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 두 가지 직업(투 잡)이나 실업 등 간접 요인까지 합세한다면 머지않아 한국은 파파라치 공화국이 될지도 모르겠다.

파파라치 제도는 사회질서 유지를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동의할 만하다. ‘경찰 열이 도둑 하나 못 지킨다’는 말처럼 이 제도는 시민들이 행정을 지원하거나 참여한다는 의의가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처럼 좋은 취지가 본말이 전도되지 않을지 우려스럽다. 사회의 비리와 부당함을 신고하는 목적이 건전한 사회질서가 아니라 보상금 때문이라면 득보다 실이 크기 때문이다. 40만원의 등록비에 비싼 카메라 장비까지 갖춰야 하는 파파라치 학원이 성황을 이루고, 한 달에 2천만원을 벌어(?)들인 파파라치들도 있다니 입맛이 개운치 않다. 서로 이웃을 믿지 못하는 불신사회가 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다. 누군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행동을 낱낱이 감시하고 있다고 생각을 해 보라. 맑고 깨끗한 사회를 만들어 가자는 목적에서 벗어나 ‘빈대를 잡자고 초가를 태우’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

파파라치의 신고를 기대하는 행정관서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국·공유지 불법사용, 도로교통법 위반을 단속하는 것은 관계부서와 경찰력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또 농어민들이 스스로 생산한 농수산물을 인터넷을 통해 팔았다 하여 불법거래로 고발하는 씁쓸한 신고는 차라리 받지 않았으면 한다.

행정관서가 신고 대상을 적절히 줄이고 보상금도 제시한 액수의 80% 정도를 사회복지 시설이나 불우이웃 돕기에 쓰도록 이끈다면, 신고자들도 보상금만을 노린다는 오해를 벗을 수 있고 사회인들도 파파라치들이 공익과 사회질서를 위한다는 명분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재식/경기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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