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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3.30 17:50 수정 : 2006.03.30 17:50

왜냐면

지성인들의 전당이라는 대학에서 선배들이 집합을 시키고 강압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 잘못된 관행을 뜯어고치려 합니다. 나 혼자서라도 이를 악물고 싸워볼 요량입니다.

올해 ㄱ대 사범대에 아들을 진학시킨 52살의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입니다. 개인적으로 당면한 문제를 놓고 고심하던 중 마침 〈한겨레〉가 최근 학원폭력을 집중 조명하는 기사를 실었기에 사연을 밝히고자 합니다.

두 아들 중 한 아이가 교육에 뜻을 두고 사범대에 갔을 때 내 마음에는 40년간 가슴에 상처로 남아 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학창시절 집안이 너무도 가난하여 기성회비 등 수업료를 제대로 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담임선생님에게 추궁받기를 밥먹듯 하였고, 어느 날에는 많은 학우들이 보는 가운데 홀로 일어나서 담임선생님에게 뺨을 세차게 얻어맞기도 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봐도 학생의 잘못이 아닌 가난 때문에 돈을 못 냈는데 교육자로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러던 중 아들이 사범대에 간다고 했을 때, 나는 남 모르게 다짐하였습니다. “그래, 내 아들을 훌륭한 교육자로 만들어서 존경받는 스승이 되도록 해서 나처럼 상처 입는 어린 학생이 없도록 하자.”

아들이 사범대에 합격해서 누구보다 기뻤습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아들이 입학하기 전 오리엔테이션에 다녀오더니 대뜸 하는 말이 “학교 안 다니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를 들어보니, 선배가 강제로 술 먹이고 한밤중에 밖에 집합시킨 뒤 머리박기를 시키고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해댔답니다. 듣고 보니 기가 막힐 뿐입니다. 나는 아들을 사범대에 보냈지 조폭 집단이나 군기 센 특수부대에 입대시킨 것이 아닙니다. 그 얘기를 듣고 저는 분에 못 이겼고, 아내는 급체에 걸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뒤 며칠이 지나고 입학식 날이 되어 분은 좀 사그라들었지만 그래도 기막힌 마음은 남은 상태로 학교에 갔습니다. 그날 기합 주고 욕설을 한 학생을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만났습니다. 그 학생에게 내가 한 말은 딱 한마디였습니다. “장차 훌륭한 교육자가 되겠다고 모인 사람들이 생전 처음 만나 하루밖에 안 된 후배들에게 체벌을 하고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할 수 있느냐? 그렇게 해야 할 내가 모르는 사연이 있다면 나를 이해시켜 주기 바란다.”

학생은 무조건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며 자신이 최고 학번이니 앞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고 철석같이 약속을 했습니다. 그 뒤 한동안 큰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25일 밤에 다시 일이 터졌습니다. 선배들이 술자리에 동석하라고 해서 앉았는데, 한 선배가 아들에게 “도대체 어떤 놈의 아버지가 학교에 관심이 많아서 입학식에 학교까지 와서 이러쿵저러쿵했냐?” 하더랍니다. 아들은 일어나서 ‘내 아버지가 그랬소’라고 말했답니다. 아버지가 한 일이 결코 잘못되거나 비겁한 일이 아니었기에 당당히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선배들이 “너 밤길 조심해라” “너의 아버지 오라고 해” 등 막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어, 다음날 학과 조교를 만났습니다. 나는 강력하게 “내 아들을 훌륭한 교육자로 만들기 위해 이 학교에 보냈다. 선배들이 하는 교육을 시정해 주기 바란다”고 요구했습니다. 조교는 앞으로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조교가 말을 해도 학생들이 잘 듣지 않는 모양입니다. 내가 학교를 찾아가고 조교를 만난 일로 인해서, 그 다음날 신입생 가운데 또 남학생만 모이라는 연락이 왔다고 합니다.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아들을 포함한 신입생들은 몹시 부담스러워했습니다.

나는 지성인의 전당이라는 대학에서 선배들이 집합을 시키고 강압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나는 혼자지만, 잘못된 관행을 뜯어고치려 합니다. 다른 동조자를 구하지 않고 나 혼자서라도 이를 악물고 싸워볼 요량입니다. 어린 시절 선생님이 제 마음에 남긴 상처 때문에 사범대에서 폭력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드는 것 같습니다.

우리 집에서 아들 학교까지는 170㎞가 됩니다. 아들을 입학시킨 뒤 벌써 세 차례나 학교에 갔다 왔습니다. 그러나 그 길이 천 리라도 가겠습니다. 사범대에서조차 폭력을 ‘당연한 일’로 여기는 고질을 없애는 일이라면 서둘러 가겠습니다.

심영근(가명)/경기도 화성시 태안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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