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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3.27 21:11 수정 : 2006.03.27 21:11

왜냐면

학생들의 ‘학교 선택권’을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소수를 위한 특권적인 교육을 요구하면서 일반 학생들은 2류, 3류 학교에 방치하겠다고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해 공교육에 경쟁 원리를 도입해야 한다”, “중산층의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려면 자립형 사립고 등 다양한 형태의 학교가 많이 설립돼야 한다.”

최근 몇몇 일간 신문이 끊임없이 제기하고, 일부 지방선거 출마 예정자들이 주장하는 학교개혁 처방이다. 이들 주장의 핵심은 “자사고나 특목고를 늘려 원하는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하며, 다양한 형태의 학교들이 (시장원리에 따라) 경쟁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단순명쾌한 처방이다. 학교교육이 수요자의 취향에 따라 사고 팔 수 있는 상품과 같고, 학교의 역할을 입시학원처럼 지식을 판매하는 데만 두어도 좋다면 그들의 처방은 옳다. 그러나 학교교육은 그처럼 단순한 원리만으로 작동하거나 입시학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학교교육은 지식습득뿐 아니라 인격 수양, 삶의 철학과 가치관의 정립까지를 도와주는 전인교육이어야 한다. 전인교육은 ‘경쟁’과 ‘선택’의 원리와는 다른 교육원리와 인간관계의 원리 등이 함께 작용하는 가운데 이루어질 수 있다. 또한, 학업성취도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은 매우 복잡하다. 가계소득 수준의 격차, 지역 간 생활여건의 격차, 부모의 학력수준이나 가정환경에 따른 가정교육의 격차 등이 그것이다.

이 많은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서 빚어지는 학교교육의 문제들을 한두 가지 정책수단으로 해결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마치 자사고나 특목고를 확대하면 교육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호언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말로는 모든 학부모와 학생들의 ‘학교 선택권’을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소수를 위한 특권적인 교육을 요구하면서 일반 학생들은 2류, 3류 학교에 방치하겠다고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여기에서 필자는, ‘학교선택권’을 강조하면서 학교교육을 입시경쟁 체제로 몰고 가려는 사람들이 교훈을 얻어야 할 실패한 교육정책의 역사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1997년부터 시행된 ‘대학설립준칙주의’가 그것이다. 당시 시장경제 원리를 앞세운 일단의 교육개혁론자들은 대학 설립을 자율화해 일정한 요건만 갖추면 대학을 세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양한 대학이 만들어지고 대학 간 경쟁이 일어나면, 부실 대학은 도태하고 경쟁력 있는 대학이 살아남게 된다는 논리였다. 이에 따라 우후죽순으로 대학이 설립되었고 결과적으로 대학교육의 부실화는 가속화할 수밖에 없었다. 비정상적으로 팽창한 대학을 정리하기 위해 정부는 ‘대학 구조조정’ 정책을 추진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립대학에 대해서는 자율성 보장이라는 미명으로 통폐합을 강제하지 못하고 ‘국공립대 통폐합’을 강제하고 있다. 대학설립준칙주의는 결과적으로 공공 교육기관이라 할 국공립대학이 줄어드는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정책이 되고 만 것이다.

학교교육의 개혁은 종합적인 관점에서 추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선진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핀란드나 스웨덴 등 북유럽 복지국가의 교육체제 못지않은 복지적인 공교육체제를 세우겠다는 비전을 세워야 한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학교교육의 혁신을 위한 공론의 장을 마련하고, 국민적인 지혜와 결의를 모으는 일이다. 아무리 급하다 해도 금방 심은 모를 뽑아 올릴 수는 없지 않은가?


안승문/서울시 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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