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6.03.27 20:47 수정 : 2006.03.27 20:47

왜냐면

납북자 또는 의거입북자라는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규정어로 이들을 남과 북 두 체제의 이념적 희생양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

최근 남북 이산가족 상봉단 취재 과정에서 남북간 상호 마찰의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납북자’라는 남쪽 취재단의 표현에 있다. 북쪽은 남쪽의 취재기자들이 상봉을 위해 나온 남쪽 출신의 이산가족들에게 납북자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상당히 불쾌해하고 있다.

북쪽의 주장은 그들이 납북자가 아니라 ‘의거입북자’라는 것이다. 북쪽의 주장을 다 믿을 것은 못 되지만, 그들의 주장도 억지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주장하는 납북자라는 사람들은 남쪽이 아주 가난했던 30∼40년 전의 어부들이 대다수다.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정치인도 아니고 군사비밀을 많이 알 수 있는 군의 고위급 장성도 아닌 가난한 어부들이 납북자의 상당수인데 이들을 북쪽에서 납치해 끌고 갔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무리다.

납북자들이 많이 입북했던 시기는 남쪽이 정치적 불안상태에 있었던 반면, 북쪽은 상대적으로 경제적·정치적 안정과 발전을 이룩하고 있던 시대였다. 그래서 그들이 주장하는 ‘의거입북’이라는 말에도 일리가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수백 명의 사람들, 그것도 정치보다는 먹고사는 일이 더 중요했을 사람들이 이념적 성향을 띠고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의거입북했다고 주장하는 것 또한 무리다.

지금 남쪽이 주장하는 대로 과거 북쪽이 남쪽의 어민들을 납치해서 북으로 끌고 가 사상교육을 시켰는가? 그렇게 보기도 어렵다. 한국전쟁 당시나 그 이후 지금까지도 바다에서의 군사력은 남쪽이 훨씬 우월했고 해상의 군사적 통제권을 거의 장악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북쪽이 굳이 체제의 우수성을 과시할 이유도 없었을 테고, 또한 고급 군사기밀을 얻을 수도 없는 일반어민들을 위험과 어려움을 무릅쓰고 납치해 갔다는 것 또한 어불성설이다.

우리가 납북자라고 주장하는 그 어민들은 대부분 생계를 이유로 사나운 파도와 싸우다 배가 표류하거나 좌초하면서 어쩔 수 없이 북쪽에 들어가게 된 사람들이다. 이렇게 북쪽으로 들어온 남쪽 사람들에게 북쪽은 자신들의 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해 체계적인 교육과 사상주입을 시켰고 그들을 의거입북자로 만들어 체제와 이념의 우수성을 선전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해 왔다고 볼 수 있다. 바로 그들의 생이별이 지금에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의 현장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북쪽이 이들을 체제선전의 도구로 활용해 왔다면, 남쪽 또한 이들을 체제안정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해 왔다. ‘납북자’ ‘피랍자’라는 단어가 그것이다. 이들에게 납북자·피랍자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과거 반공이 체제안정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던 군사정권시대의 발상의 연장이다. 납북자 또는 의거입북자라는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규정어로 이들을 남과 북 두 체제의 이념적 희생양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 정부와 시민단체의 적절한 대안 마련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이원도/서울 노원구 중계3동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