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성공하는 (농산물 유통)정책이 되려면 지원 대상이 되는 산지별 여건과 요구사항을 충분히 고려하는 유연한 지원정책이 필요하다. 최근 농산물 시장은 도매시장 중심의 거래에서 유통업체와의 직거래 중심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소비 패턴의 변화, 유통업체의 대형화 등에 따라 농산물 거래 관행이 크게 변하고 있다. 특히 국내 유통업체의 대형화는 산지에 대하여 우월한 거래교섭력 행사는 물론, 농산물을 해외시장으로부터 직접 조달할 가능성도 예측된다. 대형 유통업체와 거래교섭력을 확보할 수 있을 정도로 산지 농산물을 규모화·상품화하지 않으면 소비지 시장 출하가 불가능한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장변화에 대응하고 개별 조합단위 소규모 판매사업의 한계성을 극복하기 위하여 농협법상 조합 공동사업법인 제도가 도입되었다. 이 법인은 조합들이 공동출자하는 유통 자회사로서, 판매사업 물량을 대형화하고 소비자 지향적인 마케팅을 전문화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이러한 법인 설립을 유도하고 농업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많은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성공하는 정책이 되려면 지원 대상이 되는 산지별 여건과 요구사항을 충분히 고려하는 유연한 지원정책이 필요하다. 법인 설립이 안 되면 사업자격을 박탈한다거나 정책자금 지원을 회수하는 방식으로는 정부의 산지유통 혁신정책은 성공하기 어렵다. 정부의 지원을 필요로 하는 산지 조합이 법인 설립을 주저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수익모델 창출이 어렵다. 결국 조합 공동출자법인인 유통 자회사의 부실화는 지역농협, 조합원의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다. 둘째, 유통 자회사가 수용하지 못하는 지역 농산물의 판매는 지역농협의 몫이라는 점에서 조합에는 이중부담이 될 것이다. 셋째, 유통 자회사가 독자적인 채산성 확보를 위하여 사업 다각화를 추진할 경우 출자조합과 경합관계에 놓일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법인이 경제사업을 주도할 경우 조합의 구실은 신용사업과 단순지도사업으로 국한되어 정체성 혼란에 빠질 수 있다. 그러면 대안은 무엇인가? 정부의 자금 지원 조건을 유통 자회사 설립 방식만으로 한정할 게 아니라 지역의 요구와 여건을 감안한 대안이 검토되어야 한다. 첫째, 기존에 실시하고 있는 시·군 단위 연합사업 방식을 정부자금 지원대상에 포함해야 한다. 이는 조합경제사업 위축에 따른 불안감이 없이 조합의 적극적인 협력을 기대할 수 있다. 산지에서도 시군단위 또는 광역단위 연합사업을 통한 규모화·조직화가 필요한 시기라는 데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둘째, 조합 간 합병 가능성이 있는 지역에 대한 지원도 계속되어야 한다. 연합사업을 통해 합병의 가능성을 경험하고 합의를 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품목 중심으로 복수의 조합이 합병된다면 별도의 유통 자회사 설립 필요성은 없다고 본다. 방금 말한 두가지 방식을 추진하는 지역에서의 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 설치 자금은 전제조건 없이 지원돼야 한다.셋째, 유통 자회사 설립 방식의 법인 설립을 택한 지역은 사업이 정착될 때까지 정부에서 시설자금과 운전자금을 차등 지원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다수 연합사업은 조직화, 즉 생산자의 결합이라는 측면에서 아직 초기단계 수준에 머물러 있어 수익모델을 창출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진정한 산지유통 혁신을 위해 정부(지자체), 농협, 농업인이 삼위일체가 되는 방안이 제시되길 기대한다. 권용범/농협중앙회 천안시지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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