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3.23 18:41
수정 : 2006.03.23 18:41
왜냐면
소규모 학교가 속출하는 원인은 농어촌 인구의 노령화와 젊은층의 부족 현상, 농업경제의 붕괴와 소득 불균형, 도시집중과 지역발전의 불균형 등의 문제가 종합적으로 반영된 결과다.
교육부는 올해부터 2009년까지 농어촌지역 100명 이하의 소규모 학교를 통폐합하겠다고 밝혔다. 강원도와 전북은 46%, 충남과 전남은 45%, 전국 평균이 43%(1976개 학교)에 이르니 초중고교 10곳 중 4~5곳이 사라지게 될 전망이다. 소규모 학교를 통폐합하면 국가 재정의 효율적·경제적 운용을 꾀할 수 있고, 이는 곧 열악한 농촌교육의 질을 높이는 계기가 되어 교육문제 때문에 농촌을 떠나가는 현상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전남 곡성군을 전국 시범지역으로 지정하여 2003년 609억원을 투자해 통폐합을 완료하고 이를 전국적으로 확대하겠다는 태세다. 지난해 11월 우리 학교를 찾았던 교육부총리나 전남도교육청은 이미 성공적인 모범사례로 보고했다. 하지만 통폐합 이후 곡성지역의 교육 현실과 앞으로 추진될 정부의 소규모 학교 통폐합 정책은 또 다른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점에서 결코 성공한 정책이라 할 수 없다.
농어촌지역 소규모 학교 통폐합 정책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82년 전두환 정권 때부터 꾸준히 추진되어 왔다. 그때마다 동원된 논리가 국가 재정의 경제적 효율성을 극대화하여 학교 교육의 질을 높이면 교육문제로 떠나가는 농촌인구를 붙잡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25년이 지난 지금의 현실은 도시지역 학교에 비해 뒤질 것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 떠나가는 농어촌 인구를 붙잡지도 못하고 통폐합의 악순환만 되풀이하고 있지 않은가? 교육여건 또한 통폐합 이전보다 나아진 것도 없다. 학교건물을 현대식으로 짓고 교육 기자재를 새것으로 바꿨다고 자부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학업성취도 역시 도시지역에 비해 여전히 낮다. 좀체 수그러들지 않는 탈농현상도 마찬가지다. 획일적인 학생수 기준으로 통폐합을 추진했기 때문에 떠나가는 농촌문제 해결에도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소규모 학교가 속출하는 원인은 단지 교육만의 문제에 있지 않다. 농어촌 인구의 노령화와 젊은층의 부족 현상, 농업경제의 붕괴와 소득 불균형, 도시집중과 지역발전의 불균형 등의 문제가 종합적으로 반영된 결과다. 소규모 학교를 통폐합한다고 해서 교육의 질이 높아지는 것도, 젊은층을 농어촌지역으로 유인하고 떠나려는 농촌인구를 부여잡는 데도 명백한 한계가 있다. 중앙과 지방, 도시와 농촌, 읍과 면지역 등 지역균형 발전과 공생공존이라는 ‘농어촌지역 살리기 정책’으로 바꿔야 한다. 국가와 지자체가 해마다 수십억원을 사교육비로 지원해준다고 해결될 성질이 아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통폐합의 악순환만 계속될 뿐이다.
통폐합 결과 학업 성취도와 대학 진학률이 과거보다 높고 인근 도시지역으로 교육유학을 떠나는 탈농현상도 수그러들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 한국교육개발원의 자료가 보여주듯이 학력 격차는 부모의 경제력과 사교육 등 개인적인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고 대입 전형방식이 다양하게 바뀐 결과다. 입시제도의 개혁이야말로 탈농 억제와 농어촌지역 학교 살리기의 요체다. 오히려 통폐합으로 지역학생들의 교육 소외가 보편화되고 있고 타지역으로 역유학을 떠나야 하는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통폐합의 원칙은 해당 학교의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어떤 혜택을 주어야 하는가에 맞춰야 한다. 그런데 도시지역의 성적우수 학생들을 받아들임으로써 지역의 중위권은 물론 상위권 학생들마저 내신등급의 희생물이 될 처지에 있고, 하위권 학생들은 타지역으로 자취나 하숙비를 부담하며 역유학을 떠나는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통폐합의 교육적 혜택을 받아야 할 지역의 아이들이 오히려 피해자로 뒤바뀐 형국이다. 학비, 기숙사비, 급식비, 보충학습비 등이 전액 무료이고 내신등급마저 안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최적의 학교인데 어느 누가 기피하겠는가. 여기에 통폐합을 근거로 명문고나 우수고교를 만들려는 학교장의 조급한 성과주의와 실적 쌓기 욕심이 더욱 부채질하고 있으니 학교 운영의 보수화와 폐쇄성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학교 운영에서 학교장의 자율권만 강화되었지 교육 주체들의 쌍방향 소통구조는 찾기 어렵고 상치교과 수업과 획일적인 교육과정 운영도 과거와 다르지 않다.
도시인구나 젊은층을 농어촌으로 끌어들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통폐합의 희생자를 양산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면 이는 결코 성공한 정책일 수 없다. 소규모 학교는 탈농을 부추기는 원인이 아니라 그 결과다. 그러므로 정부는 입시제도의 개혁과 더불어 소규모 학교의 효율적 운영을 위한 정책을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이다.
박명섭/전남 곡성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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