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 제4회 아시아·태평양 출생등록 회의를 마치며
영국에 본부를 둔 국제어린이후원단체 ‘플랜인터내셔널’은 저개발국 어린이들이 출생등록을 통해 존엄을 보장받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국제적인 운동을 펼치고 있다. 한국 어린이들도 1953년부터 79년까지 이 단체를 통해 원조를 받았으며, 플랜코리아는 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이후 외국 어린이들을 후원하고 있다. 편집자 출생증명서가 없는 어린이는 교육과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없음은 물론,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인신매매, 불법노동, 소년병, 조혼 등 여러 형태의 착취대상이 된다. 폐해는 어린 시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방글라데시의 소녀 수보르나는 겨우 7살 때 집 근처에서 인신매매단에 납치됐다. 그러나 아버지가 딸을 찾아내 집으로 데려가려는 것을 관청에서 불허했다. 사헤브 알리는 학교 갈 나이가 되었지만 학교에서 받아주지 않았고, 다르마는 학교에 다니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강요로 길거리에서 술을 팔아야 했다. 이렇게 부당한 경우를 당하는 아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출생등록’이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아이의 이름, 국적, 나이, 부모의 신분을 법적으로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아이의 건강과 안전, 성장을 보장받을 수 없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는 출생등록이 없는 아이들이 어느 곳보다 많다. 이 지역의 2900만명 이상의 어린이들이 6살 이전까지 출생증명서를 발급받지 못하고 있으며, 남아시아 어린이는 70%가 출생등록이 되어 있지 않다. 동아시아에서도 출생등록이 안 된 어린이가 전체의 19%에 이른다. 1989년에 비준된 유엔 아동권리협약은 어린이가 출생등록을 통해 신분과 국적을 보장받도록 명시하고 있다. 출생증명서가 없는 어린이는 교육과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없음은 물론,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인신매매, 불법노동, 소년병, 조혼 등 여러 형태의 착취대상이 된다. 방글라데시에서 어린이들의 불법적인 조혼이 성행하는 이유도 출생 등록률이 7%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출생 미등록의 폐해는 단지 어린 시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법적으로 출생이 증명되지 않는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고립될 수밖에 없다. 여권, 운전면허증도 만들 수 없으며, 혼인신고도 할 수 없고, 투표나 재산상속 권리도 행사할 수 없다. 은행 이용도, 정규직 취업도 안 된다. 아무런 사회적 보장도 받을 수 없는 셈이다. 국가적 차원에서도 피해가 크다. 출생증명 기록은 주민등록 시스템의 핵심이자, 효과적인 개발계획 수립을 위한 인구통계의 기본이다. 또 지진해일 사태에서 보았듯이, 재난이나 비상사태 때 정확한 사망자 수를 파악하고 미아를 가족에게 찾아주는 데도 결정적 구실을 한다. 출생등록 데이터가 없이는 소외계층과 극빈층의 사회적 고립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 아·태 지역의 출생 등록률이 유난히 낮은 이유는 ‘인식의 결여’ 때문이다. 출생등록이 기본권 보장의 토대라는 이해가 부족하고, 가난이나 배고픔처럼 현실적인 문제들에 견줘 그저 형식적인 문제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저개발국은 경제적 이유로 출생등록 시스템 운영에 충분히 투자하지 못하고, 국민들도 출생등록에 드는 비용에 부담을 느낀다. 대부분의 저개발국에서는 출생등록을 할 수 있는 관청이 적거나 도시에 집중되어 있어 여행경비도 큰 부담이 된다. 남녀차별, 소수민족 차별, 지역분쟁 등도 등록률을 낮추는 큰 요인이다.출생 등록률을 높이려면 좀더 강력하고 혁신적인 조처가 필요하다. 그 하나가 지역 네트워크 구축이다. 우리는 지난 13일부터 17일까지 타이 방콕에서 열린 ‘제4회 아시아·태평양 지역 세계아동 출생등록 회의’에서 이런 의견들을 각국 정부에 알렸다. 약간의 창의성과 결단력만 있다면 극빈국에서도 출생 등록률을 크게 높일 수 있다. 캄보디아는 크메르 루주 집권 시절 주민등록 기록이 완전히 파괴되었지만 전국적인 이동 캠페인을 통해 15개월 만에 유실된 기록의 70%를 복구했다. 수십년의 내전으로 황폐화한 아프가니스탄은 예방접종과 함께 출생등록을 실시함으로써 2004년에 1천800만명의 어린이가 출생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앞서 말한 수보르나, 사헤브, 다르마는 결국 출생등록을 통해 집으로 안전하게 돌아가고 원하는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출생증명서를 갖지 못한 수백만명의 어린이가 부당한 환경에서 벗어나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한 출생등록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짐 에머슨/플랜인터내셔널 실무 책임관
리마 살라/유니세프 부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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