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3.20 22:51
수정 : 2006.03.20 22:51
왜냐면
침략자의 편에 서서 군대를 파견하고 파병 연장까지 획책하면서 어떻게 일제 추종세력을 비판하고 역사 바로 세우기를 말할 수 있을까.
한자성어에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말이 있다. 꼭 진나라의 환관 조고의 고사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 말이 권력이 진실을 왜곡하고 사슴을 말로, 검은 것을 흰 것으로 바꿀 수 있음을 함축하고 있음을 안다. 그러면서 우리는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하는 엉터리 주장에 동조한 사람을 가엾이 여기고, 우리는 절대로 그런 지조 없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 자부한다.
현실 속에서 한국의 위상은 어떠한가. 3년 전 미국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괜한 전쟁을 일으켜 이라크 사람들을 마구 살육하고 고문해온 것을 보면서도, 이 명분 없는 파괴를 그만두라는 말 한마디 못하고 오히려 군대를 보내 살육자를 도왔다. 전쟁범죄자며 학살원흉인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지금도 후안무치하게 이라크 침략을 “어려웠지만 올바른 결정이었다”고 정당화하고 있으며, 우리 정부는 그에 대해 유언·무언의 동조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옛날 힘 있는 사람이 사슴을 말이라고 했을 때 한마디 반대도 못한 것과 무엇이 다르랴.
역사는 의롭지 않은 힘에 저항하고 침략을 반대할 때 바로 세워지는 것이고, 정의롭지 않은 권력에 빌붙어 침략을 미화하고 추종할 때 굴절된다. 오늘날 침략자의 편에 서서 그들을 위해서 국민의 혈세를 써 가면서, 그리고 국민을 사지로 몰아넣어 가면서 군대를 파견하고, 그것도 모자라 파병 연장까지 획책하는 마당에 어떻게 일제 추종세력을 비판하고 역사 바로 세우기를 말할 수 있을까. 지난날 친일파들은 오늘날 숭미주의자들과 똑같이 의롭지 않은 세력에 대해 굴종하고 그들이 일러주는 대로 사슴을 말이라고 믿었다. 지나간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와 똑같이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 오늘날 바른 역사를 만들어 가는 일이다.
우리가 침략자를 위해서 군대를 보내고 파병연장까지 함으로써 한-미 관계를 공고히 하고 선진국 대열에 섰다는 만족감을 얻을지는 모르지만 사실상 잃은 것이 더 많다. 첫째 우리는 침략을 부정하고 평화를 애호하는 민족이라는 자부심을 상실했다. 그 대신 의롭지 않은 힘에 굴종하는 민족이라는 자괴감만 남을 뿐이다. 둘째, 윤리와 도덕을 상실했다. 국내에서 살인죄를 중벌로 다스리면서 이국에서 학살자를 돕는 행위를 어떻게 합리화할 수 있을까? 이것은 결코 타당화될 수 없는 윤리의 이중 잣대를 국민에게 강요하는 일이다. 셋째, 강대국이 시키면 제 돈 들여서 전범 대열에 서는 용렬한 나라로 비침으로써 국가의 체통을 크게 손상했다. 미국은 한국을 한없이 업신여길 것이고, 다른 나라들은 한국이 미국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나라라는 인식을 더욱 굳게 할 것이며, 특히 아랍세계에서는 한국을 아무 원한이 없는데도 자신의 형제들을 죽이는 데 동참하는 이해할 수 없는 나라로 볼 것이다. 넷째, 국내에 노숙자들이 보여주듯이 굶주리는 사람이 아직도 많고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는데, 막대한 국민 세금을 침략군을 돕는 데 쓰는 것은 불합리하고 부도덕하다.
침략을 부정하고 정의를 존중하여 바른 역사를 만들어 가는 일, 그것이 오늘 우리가 실천해야 할 역사 바로 세우기의 과제이며 민족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길이다.
이동인/충남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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