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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3.20 22:49 수정 : 2006.03.20 22:49

왜냐면

오염 실태 파악과 복구는 빠를수록 좋다. 게다가 이는 미군과의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어갈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내가 사는 경기 파주시 봉일천리에는 미군기지 캠프 하우즈가 자리잡고 있다. 미군이 떠나가고 기지의 간판을 떼어낸 지 1년 남짓, 시민들은 19만평이 넘는 이 땅을 돌려받을 꿈에 부풀었다. 2년 전 교도소를 세우겠다는 정부의 계획을 백지화시킨 뒤에도 돌려받은 땅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설계하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 그런데 참으로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고 있는데 김칫국부터 마신 꼴이 되어버렸다. 최근 보도된 대로 토지의 이용이나 시설을 중단해야 할 만큼 땅이 기름에 오염되고 지하수에 페놀 등 독성물질이 녹아 있는 줄 몰랐으니 말이다. 게다가 미군과의 반환 협상은 오리무중이다.

며칠 전 기지 부근을 둘러보다가 개울에 기름띠가 떠가고 그 바닥은 귤 색깔로 변한 채 미끌거리는 정체불명의 물질로 뒤덮여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기억하기로는 5년 전에 관이 파손되어 수십 드럼의 석유가 개울로 흘러들었던 곳이다. 미군기지 안의 땅과 물만 오염된 것이 아니라 그 밖의 지역까지 지금도 오염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그 물이 바로 논으로 흘러들어가 쌀을 키운다. 밥상머리에 앉은 아이들을 불안스레 바라보고 있노라니 우리 정부의 침묵이 참으로 길게만 느껴진다.

1992년 미군에게 반환받은 필리핀의 클라크 공군기지의 경우, 기지에 들어와 산 주민들 가운데 지하수와 중금속 오염에 노출돼 지금까지 520명 이상의 암 환자가 발생하였고 수비크 해군기지에서는 1934명의 피해자가 집계되었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미군 기름탱크가 있었던 인천 문학산 지역의 경우 지하수를 먹은 주민들에게서 암 발생률이 매우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아이가 다쳐서 신음하고 있는데 책임을 가리느라 방치하는 부모는 없다. 반환되는 미군기지도 우리 국민이 거기에서 살아야 할 우리 땅이다. 시간이 갈수록 미군기지의 환경오염이 확산되고 주변지역 주민들에게 치명적 피해를 줄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는 사실을 알면서 대책 없이 미군과의 협상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정부는 시급히 미군기지 인근 지역까지 정밀조사를 확대해야 한다. 그리고 법에 명시된 대로 토양보전대책지역으로 지정하여 토양과 지하수를 정화시키는 일에 나서야 한다.

미군기지 인근 주민들의 건강에 대한 역학조사도 불가피하다. 그에 따르는 비용은 협상이 마무리된 뒤 미군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면 될 일이다. 오염 실태 파악과 복구는 빠를수록 좋다. 게다가 이는 미군과의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어갈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오염의 실상과 대책의 시급함을 소상히 밝힘으로써 국내외 여론을 활성화하게 되면 이 힘은 완강하게 맞서고 있는 상대에게도 미칠 것 아닌가.

오염을 시킨 쪽이 그 책임을 지고 정화한다는 것은 법 이전에 상식이다. 정부의 협상 원칙이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관철시키고자 하는지, 얼마나 더 기다리고 있어야 할지 알 길이 없는 주민으로서의 제안이다.


이애경/파주신도시친환경개발시민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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