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3.16 18:00
수정 : 2006.03.16 18:00
왜냐면
여승무원을 얼마든지 교체할 수 있는 열차 부속품 정도로만 생각하는 철도공사는 지금 고속열차 ‘부속품’을 350여개나 빼놓고 달리고 있다.
파업이 시작된 지 벌써 17일째에 접어들었다. 비상금 지갑 속 가족사진을 얼마나 꺼내봤는지 언제부턴가 사진 모서리가 두 갈래로 갈라졌다. 돌아올 날을 기약할 수 없는 나를 보내준 가족들과 지금 함께 투쟁하고 있는 동지들이 나를 버티게 하는 큰 힘이다.
채용공고를 보고, 이력서를 내고, 발표를 기다리고, 합격소식을 들었던 때가 그리워진다. ‘자회사 위탁 비정규직 노동자’. 지금 우리 승무원의 모습이다. 내가 일하는 한국고속철도 안에서는 여승무원만 자회사의 계약직으로 고용된 비정규직이다. 열차팀장, 열차기장, 차량관리장 모두 철도공사 소속 정규직이다. 같은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데 왜 우리 여승무원들만 비정규직이어야 할까?
손님과의 최접점에서 일하는 사람이 여승무원인데, 철도공사는 우리가 없어도 열차 안전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주장한다. 지금 당장은 여승무원이 없어도 열차안전에 이상이 없을지 모르지만, 그건 철도공사가 근시안적인 눈으로 경영을 하고 있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이용자의 생명과 직결된 가장 기본적인 안전은 철도공사가 선택할 문제가 아니며, 선택할 권한 역시 없다. 자신의 안전과 생명이 다른 사람의 선택에 따라 좌우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승무원을 열차에 딸린 부속품 정도로만 생각하는 철도공사, 시간이 지나면 얼마든지 교체할 수 있는 나사 정도로 생각하는 철도공사는 지금 고속열차 ‘부속품’을 350여개나 빼놓고 달리고 있다.
비정규직으로서 2년 동안 힘들고 괴로웠던 시간을 생각하면 지금 파업은 1년이고 2년이고 얼마든지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철도공사는 여승무원들에게 끊임없이 직위 해제와 해고 위협을 하면서 다시 위탁도급 자회사로 가라고 강요하고 있다. 감사원으로부터 경영이 부실하다는 이유로 매각 청산 대상으로 지목된 ‘케이티엑스(KTX) 관광레저’가 그 회사다. 관광열차 개발과 같은 이벤트를 주업무로 하는 회사가 승무원 운용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은 누가 봐도 분명하다. 철도공사는 공사 관리자를 파견해주고, 승무원들을 보내주고, 물품판매 서비스까지 그 회사에 내준다고 한다. 도대체 왜 철도공사가 케이티엑스관광레저에 그런 특혜를 주어야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최근 알게 된 가장 인상적인 글이 있다. “끝까지 살아남는 종은 ‘우수한 종’도 아니고 ‘강한 종’도 아니다. 바로 ‘변화하는 종’이다”라는 글귀다. 이 글을 읽은 곳은 참 슬프게도 지금 우리 승무원들이 점거농성을 하고 있는 한국철도공사 서울지역본부의 화장실이다. 철도공사는 자신들이 화장실에까지 붙인 이 글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 협상 태도와 시각에 변화가 있길 바란다. 정부 역시 신자유주의와 외환위기 극복을 외쳐대면서 비정규직을 수없이 양산했던 전례와 지금의 현실을 직시하고 책임 있는 태도로 문제 해결에 성의를 보여야 한다.
강유선/한국고속철도(KTX) 열차승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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