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아이야, 경쟁은 너희 몫이 아니란다. 큰 나무와 작은 풀이 함께 살아가듯, 도시와 농촌도 함께 살고 너희들도 더불어 살아가야 한단다. 그걸 배우거라. 편견 없이 받아들이고 거침없이 행동하며 자라나 꺼져가는 농촌의 소중한 씨앗이 되어주렴. 하나 있는 아들 녀석이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일터에 양해를 구해 잠시 일손을 놓고 학부모가 된다는 것을 실감하러 입학식장을 다녀왔다. 아이들은 입시지옥이나 학교폭력 따위는 딴 세상의 이야기일 따름이고 그저 맑고 꾸밈없는 천사들이었다. 시커먼 먹구름을 뚫고 내려온 우리의 희망, 농촌의 아이들이었다. 올해 신입생은 모두 17명이었다. 사내아이 11명에 여자아이 6명. 지난해 신입생이 27명이었다고 하니 한해 사이에 10명이나 줄어든 셈이다.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충남 홍성군 작은 면의 이야기다. 통계를 보면 우리 면에는 1500여 가구에 470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데, 겨우 17명의 입학생이 있을 뿐이라니 놀랍기 그지없다. 폐교가 거론되는 면내의 다른 초등학교(우리 면에는 두 개의 초등학교가 있다)보다는 낫다지만 학생 수가 이처럼 줄어드는 데 대해 주위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실 우리 부부는 작은 학교에 아이를 맡기게 된 점을 ‘다행’스럽게 생각하기도 한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30여년 전에는 무려 70명씩 한 교실에 앉아 있어야 했고, 지금은 그 수가 절반 가까이 줄어 평균적으로 한 반에 30여명 수준이라 한다. 하지만 여전히 좀더 많은 관심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과 자기반 아이들 이름을 하루 한 번도 못 불러주었다고 가슴 아파 하는 선생님들이 존재한다. 그런 면에서 아이들 수가 적다는 점은 아무래도 적절한 관심 속에서 자라날 가능성이 크다고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효과적인 교육이 가능한 학급 규모의 문제와는 별개로 농촌의 학생 수 급감과 학교 문제는 심각한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내 아이만 생각하며 다행이라고 여길 여유가 없다. 내가 아는 어느 40대 농사꾼의 넋두리는 지난 30여년 사이의 변화를 잘 말해준다. “우리 마을에만 국민학생이 80명이나 있었지. 아침 등교 때면 상급생부터 코흘리개까지 깃발을 들고 발을 맞춰 학교로 가곤 했어. 장관이었지. 그런데 지금은? 갓난아이부터 고등학생까지 모두 합해도 8명이 될지 말지 하지.” 그런 식으로 인구가 줄고 아이들이 덩달아 줄다 보니 이제 아이들은 마을 안의 폐교를 지나 면소재지로 통학을 해야만 한다. 면을 통틀어 한두 학교만 남아버렸다. 통폐합의 결과다. 학교버스라도 탈 수 있는 아이들은 다행이지만, 대개 아이들을 실어나르는 일은 시골 사는 학부모들의 중대 일과가 되어버렸다. 통학비용의 문제도 그렇지만 농번기가 되면 농민들은 아이들 통학문제로 마음 상하는 일이 다반사다. 안전한 통학로도 확보되지 않은 시골도로는 늘 불안하기만 하다. 그나마 면에 한두 개 있는 학교마저 다시 통폐합 이야기가 나돌기도 한다. 몇 학교를 합해 효율을 높여 보자는 경제논리가 작용한 결과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교육문제에 경쟁과 경영 논리를 들이대는 것은 심히 못마땅하다. 다들 아는 이야기일 테지만 시골에서 학교는 아이들을 위한 교육시설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마을의 구심이고 문화의 산실이다. 그나마 남아 있는 공동체성, 농촌의 정체성마저도 학교와 함께 문을 닫을 상황이다.좀 커다란 도시가 1시간 안팎의 거리에 있는 소도시나 읍면의 경우는 또 다른 문제에 처해 있다. 우선 교사들부터가 자신들 자식은 도시에서 키우며 출퇴근을 하고 있다. 따라서 방과 후의 지도나 지역사회와의 결합은 요원한 일이 되어 버린다. 퇴근하기도 바쁘니 말이다. 그들의 어려움도 만만한 것은 아니겠으나, 지역사회와 농촌에 깃들지 않은 교사에게서 농업의 의미나 농촌에 사는 자긍심을 배운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 아닐까. 학생이 줄어든다는 것은 결국 농촌에서 아이를 키우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 먹고살기 힘들다는 뜻이다. 농촌 없는 도시는 없고, 도시라는 꽃은 농촌에 뿌리를 깊게 내려야 한다. 농업과 농촌이 무용한 것이 아니라면, 먹을거리는 모두 수입하고 교육도 시장과 경쟁의 논리에 내동댕이칠 작정이 아니라면 이제라도 큰 관심과 대책이 절실하다. 그러나 얼마나 다행인가. 아직도 시골에서 아이들을 키워내는 젊은 부모들이 있고, 저토록 곱게 자라나는 들꽃 같은 아이들이 있으니. 농부들이 곡식과 함께 아이들을 농촌의 희망으로 키워낼 동안 사회는 농촌의 희망을 만들어내야만 한다. 우리 아이들이 농촌을 지켜내고 다시 그 아이의 아이들이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그 작디작지만 소중한 학교를 지켜내게 해야 한다. 바라노니, 아이야, 경쟁은 너희 몫이 아니란다. 큰 나무와 작은 풀이 함께 살아가듯, 도시와 농촌도 함께 살고 너희들도 더불어 살아가야 한단다. 그걸 배우거라. 편견 없이 받아들이고 거침없이 행동하며 자라나 꺼져가는 농촌의 소중한 씨앗이 되어주렴. 김영규/충남 홍성군 홍동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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