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6.03.09 17:40 수정 : 2006.03.09 17:40

왜냐면

모두들 더 크고 넓은 도시로 간다. 약자일 수밖에 없는 농·어촌의 해맑은 아이들을 단지 그 수가 적다는 이유로 국가가 포기한다면 말이 되는가.

도시의 신설학교 교사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배울 권리를 잃어버린 시골 학교 아이들의 슬픈 이야기를 소개한다. 우리 학교는 전체 학생 11명인 산골마을의 소규모 학교로 몇 해 동안 복식학급(2개 학년을 한 학급으로 편성하여 한 교사가 가르침)을 운영했다. 1년 동안 담임으로 복식학급을 맡아본 경험은 교사로서 많은 한계와 자괴감을 안겨주었다. 제대로 된 학교교육을 위한다면 복식학급을 두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2006년부터 3복식 학급(세 학년을 한 학급으로 묶음)을 편성하라는 지침이 충남교육청에서 내려왔다. 예고된 사항도 아니었고 어느날 갑자기 학급편제 예외조항으로 내려온 지시였다. 지침대로라면 3·4·5학년 세 학년이 한 교사한테 한 교실에서 수업을 받아야 하고, 입학하는 1학년 새내기들은 졸업반 6학년과 같이 배워야 한다. 3복식 담임은 1주일에 서로 다른 30과목 이상을 가르쳐야 하며, 아이들은 일반 학교에서 40분에 배울 내용을 13분 동안 혼란스런 가운데 공부해야 한다. 교사는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여 존재의 가치를 잃어버린 곳, 학생이 기본학습을 받지 못하는 곳을 학교라고 부르며 다녀야 할 판이다.

모두들 더 크고 넓은 도시로 간다. 이제 시골은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사람들만 남아 자연 속에 어린 아이들을 맡기고 꾸밈없이 순수하게 살아가고 있다. 사교육을 받을 형편이 안 되어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배움의 전부인 아이들인데 이제는 그것마저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말로는 농어촌을 살리고 양극화를 해결한다며 혁신을 부르짖고 있는데 학교는 지난해보다 더 어려워져 슬프기 그지없다.

충남교육청은 혁신부문 최우수 평가로 80여억원을 받았다고 신문에 나고, 교육감은 농어촌 학교를 위해 이것저것 잘했다고 자랑한다. 하지만 같은 곳 같은 제도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뒤에서 허울뿐인 거짓 선전이라고 한탄하고 있다. 아마 올해도 커다란 실적(많은 학교 통폐합)으로 또다시 교육혁신 최우수상을 노리는 것 같다.

헌법 제31조 제 1항은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여 국민이 차별받지 않고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그런데 너무나 약자일 수밖에 없는 가난한 농·어촌의 해맑은 아이들을 단지 그 수가 적다는 이유로 국가가 포기한다면 말이 되는가.

어느 외딴 섬마을에서, 황금빛 벌판의 작은 농가에서, 높은 산의 정기를 받고 자라는 산골 마을에서, 이 나라를 아니 세계를 이롭게 할 만한 위인이 나올 수도 있지 않겠는가? 큰 꿈을 가지고 자라나는 이 아이들이 뛰어놀기도 하고 노래도 부르며 배울 학교가 있는데, 그 학교에서 배울 수 없다면, 가르쳐야 하는 교사가 가르칠 수 없다면, 교육부는, 교육청은, 교사인 나는, 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교원의 정년을 더 단축하더라도, 교원의 봉급을 줄이더라도 3복식은 막아야 할 최악의 정책이다. 왜냐하면 교육부도 교사도 학교도 아이들을 가르치고자 존재하기 때문이다. 교육당국은 잘못된 정책을 지금이라도 바로잡도록 힘써주기 바란다. 그래서 아이들이 그동안 배워왔던 펜의 힘을 느낄 수 있도록 해 주시라. 그래야 우리 아이들이 더 큰 꿈을 더 큰 소망을 가질 수 있다. 그래야만 가르치는 우리 교사들도 온힘을 다하여서 아이들의 소중한 꿈을 북돋울 수 있다.

권주태/충남 청양 백금초등 교사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