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2.27 18:15
수정 : 2006.02.27 18:15
왜냐면
교사의 사법경찰권은 학생을 잠재적 범죄자로, 학부모를 범죄자의 보호자로 만들 수도 있다. 사법경찰권이 학교 현장에 주어져야 한다면, 교사가 아닌 학생회나 학부모회에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열린우리당 학교폭력 예방·근절을 위한 정책기획단이 최근 교육부, 여성가족부, 대검찰청, 청소년위원회 등 관계 부처들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열어 교사에게 사법경찰권을 주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교사에게 ‘학부모 소환권’을 주어, 해당 학부모가 소환에 불응하면 벌금형을 줄 수도 있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주장을 지난해 3월 서울 ㅈ중학교의 한 교사에게도 들은 적이 있다. 일진회 소속 학생들을 교사들이 수사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의견이었다. 일선 학교 쪽에서는 학교폭력 실태를 은폐하려고만 하고, 조사를 막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날로 심해지는 학교폭력에 대처하기 위해 교사의 교권을 높여주기 위한 수단으로 수사권 부여를 검토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면 스쿨 폴리스와 교사에게 사법경찰권을 주는 제도의 타당성을 따져보기 전에, 그 근거부터 살펴보자. 지난해 3월, 경찰은 전국적으로 40만명의 학생 일진회 조직원이 있고, 그에 따른 불안감과 학교폭력을 없애기 위해서 스쿨 폴리스제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매년 대학 수능시험을 보는 고등학생 수가 65만명이다.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계산하면, 약 400만명이 현재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것으로 추산할 수 있다. 전체 중고등학생 기운데 무려 10%가 일진회 조직의 행동원이라는 말이다. 서울지역 중·고교는 학년별로 약 300여명의 학생들이 재학 중이다. 이 계산을 따르면, 한 학년당 30여명의 일진회 학생이 있고, 학교 전체로 본다면 90~100여명의 일진회 조직원이 활동하고 있는 셈이다. 이를 스쿨 폴리스 1명과 사법경찰권을 가진 교사 1명이 막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인가?
지난해, 정부는 스쿨 폴리스제를 시범실시하고 학교 안 폐쇄회로 텔레비전(시시티브이)까지 도입했다. 그러나 학교폭력은 단기적으로 줄어들고 있는 것처럼 보일 뿐, 시시티브이는 말 그대로 무용지물이 되었고, 학교폭력을 해결했다는 이렇다 할 결과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번엔 사법경찰권을 교사에게 주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전문성, 공정성, 실효성, 투명성 등 여러가지 점에서 매우 부적절한 방안이다. 그런 일이 있어선 안 되겠지만 혹시라도 성적 조작, 학생 체벌, 떡값 등으로 입방아에 오른 부적격 교사가 사법경찰권을 가진다면 어떻게 될까? 학부모를 소환해서 응하지 않으면 벌금을 매기고, 응했을 땐 엉뚱한 것을 요구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학부모로서는 어쩔 수 없이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절대다수의 교사들은 사명감과 헌신성으로 교단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학생을 볼모로 학부모를 반협박하다시피 하는 교사들도 적지 않게 보아왔다. 대검찰청은 교사들이 수사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사법경찰권을 주는 제도에 반대한다는 견해를 보였다고 한다. 그렇다. 전문성이 없기 때문에 특정인에게 편향된 수사를 할 수도 있고, 사법경찰권이라는 특권을 악용할 소지도 없지 않다. 더구나 교사의 사법경찰권은 학생 모두를 잠재적 범죄자로, 학부모를 범죄자의 보호자로 만들 수도 있다. 열린우리당은 학생회·학부모회·교사회의 법제화 방안을 추진한 바 있는데, 교사에게 사법경찰권이 주어진다면 학생회와 학부모회는 사실상 교사회의 들러리 기구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학교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사법경찰권이 학교 현장에 주어져야만 한다면, 오히려 교사가 아닌 학생회나 학부모회에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학생들 간의 폭력 문제는 학생회에서 처리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라고 본다. 학생들 간의 폭력사태 발생 때, 학생들끼리의 모의재판을 거쳐 사회봉사나 휴학 등의 방안을 학생들 스스로 결정하게 하고, 그것을 가해 학생이 반드시 지키도록 하며, 지키지 않을 경우 사법당국과 연결해 사법처리를 하는 것이다. 이는 우발적인 폭력 문제를 학생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하고, 도저히 학생들이 처리하기 어려울 경우에 한해서만 사법부의 힘을 빌릴 수 있는 시스템이다.
지난해 5월 경남도교육청이 2002년 펴낸 ‘학생 생활지도 길라잡이’ 자료집에 학교폭력을 은폐 또는 축소하라고 지시하는 내용이 담겨 있어 파문이 인 적이 있다. 이런 사례를 보더라도, 학부모가 학교 쪽에 정보를 쉽게 요구할 수 있도록, 학부모회에 사법경찰권을 부여하는 것이 교사들에게 사법경찰권을 주는 것보다 더욱 안전하고 효율적이지 않을까?
이계덕/청소년활동가·성공회대 신방과 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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