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2.23 17:48
수정 : 2006.02.23 17:48
왜냐면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어우러져 사는 사회, 자식이냐 노동이냐를 두고 갈등할 필요가 없는 사회, 그런 나라야말로 진정한 선진국이 아닐까?
다음주면 새학년, 새학기가 시작된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은 기대와 두려움이 섞인 복잡한 심정이다. 상당 부분 어머니들의 노동력으로 지탱되고 있는 초등학교 교육체계는 자칫 장애인 학부모, 한부모 가족, 일하는 어머니들을 “아이들 교육에 관심도 없는 이기주의 집단”으로 내몰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녹색어머니회는 국가가 책임져야 할 어린이들의 교통안전을 대신 짊어지고 있다. 그리고 대도시 초등학교 저학년에서 아이들의 어머니들을 한 달에 1~2번씩 반강제적으로 동원하는 급식당번 제도 역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급식당번 제도는 우리 사회의 ‘비장애인 중심주의’가 가지고 있는 폭력성을 담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장애로 인정되는 범주가 좁은 편이지만, 세계보건기구(WHO)의 기준에 따르면 세계 장애인구는 전체 인구의 10%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가정에서 장애인을 돌보고 있거나 자신이 장애인인 어머니들은 아이가 달력에 동그라미 쳐놓은 급식당번 날이 다가올 때마다 비애 어린 상처를 경험하고 있다.
둘째, 현재 학교는 핵가족을 보편적인 가족으로 간주하고 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 통계를 보면, 전체 가족 중에서 부부와 미혼자녀로 구성된 가족은 52.3%에 불과하고 한부모 가족이 5.3%로 나타나고 있다. 적지 않은 수치다. 생계부양의 책임으로 인하여 점심시간에 학교에 와서 밥을 풀 수 없는 한부모들의 애환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셋째, 일하지 않는 여성은 없다. 2004년 현재 기혼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은 50%에 이른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여성들의 노동가치는 ‘반찬값 벌기 위해 하는 노동’으로 폄하된다. 가사노동자인 전업주부들의 노동가치는 월 100만원을 훨씬 웃돌고 있음에도 여전히 ‘집에서 노는 자’로 과소평가된다.
지난해 3월 서울시 교육청은 그동안 강제 실시 되었던 어머니 급식당번 제도를 폐지하고 학교 차원에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라는 학교급식 실시지침을 내려보냈다. 그러나 대부분의 초등학교는 용어만 자원봉사로 바꾼 채 형식적인 설문조사 후 기존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자율이라는 외피를 쓰고 학부모를 반강제적으로 동원하여 이루어지고 있는 학교급식당번 제도는 새 학기부터 완전히 사라져야 한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어우러져 사는 사회, 독신부모와 한부모 가족이 더 이상 낙인찍히지 않는 사회, 자식이냐 노동이냐를 두고 갈등할 필요가 없는 사회, 그런 나라야말로 진정한 선진국이 아니겠는가? 정부는 우리 사회의 저출산이 진정 걱정이라면 학부모가 경험하는 부당한 부담감을 줄여주는 정책, 부모이기 때문에 행복감이 물밀듯이 밀려올 수 있는 대책 수립에 나서야 할 것이다.
조주은/어머니 급식당번 폐지를 위한 모임(cafe.daum.net/momcry)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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