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6.02.23 17:45 수정 : 2006.02.23 17:45

왜냐면

보증금을 마련하지 못해 20여명이 길거리로 다시 나앉을 상황이다. 이들의 기본권이 보장되는 사회가 될 때 문명과 인격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노숙인 생산공동체 ‘더불어 사는 집’ 식구들은 이달 말이면 다시 노숙으로 내쫓기는 신세가 될 것 같다. 애초 노숙인 20여명은 철거될 빈집인 서울 창신동 삼일아파트에 모여 살았다. 그러다가 청계천 복원 완료 시점인 지난해 9월 말 정릉에 있는 도시개발공사 다가구 주택이 비어 있어 그곳에서 올해 2월 말까지 산 뒤 이후로는 보증금(2400만원)을 내고 살기로 합의했다.

노숙인들은 삼일아파트 사이 공터 쓰레기 더미를 치우고 3곳의 장터를 열어 기증품과 폐품 등을 수집하여 재활용품으로 판매하며 생계를 꾸려 왔으나 철거공사가 지연되고 동절기가 닥쳐 제대로 장사를 못하여 식구들 모두 먹고살기가 빠듯하다. 폐품 수집이나 공공근로로는 자신의 용돈 쓰기에도 모자라는 판이다. 처음부터 빈털터리인 노숙인들은 하늘에서 돈벼락이 떨어지기 전에는 목돈을 마련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서울시가 빈민 주거안정 사업으로 시작한 도개공 임대주택을 보증금 없이 임대하는 제도가 되지 않는다면 보증금이 몇천만원씩 하는 임대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서울에는 5000여명의 노숙인이 있는데, 2000여명이 쉼터 등에 수용되어 있고 3000여명은 길거리에서 잔다고 한다. 지금 임대가 안 되고 있는 다가구주택을 적당히 임대하여도 쉽게 해결할 수 있는데 보증금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 한다.

어떤 분은 쉼터 같은 데 들어가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우리 식구들은 대부분 쉼터를 다녀온 이가 많은데다, 쉼터는 일단 들어가면 선임자 텃새가 감방보다 심하고 숙식만 제공될 뿐 내일에 대한 희망이 없다. 또한 노숙인들이 길거리에서 보이지 않게 하겠다는 미봉책일 뿐 되풀이되는 노숙에 대한 근본 처방은 아니다.

더불어 사는 집 식구들은 잠자리, 먹거리, 일자리를 안정되게 마련하여 장래가 보장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계획을 수립하여 추진하고 있다. 더불어 사는 집의 장사가 조금씩 나아져 이제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며, 올봄부터는 기증품이 늘고 여러 사람의 일자리도 생겨 계획이 활성화할 전망이다.

이런 자발적 활동은 장려되고 지원되어야 함에도 서울시는 ‘신규’라는 이유로 협조를 거부하고 있다. ‘아름다운 가게’ 같은 데는 기증품이 쏟아진다고 하는데 노숙인 당사자들이 운영하는 더불어 사는 집에는 아직까지 기증품이 많지 않아 재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더불어 사는 집에서 생활한 이들 상당수는 우선 마음이 편하고 희망을 만들기 때문에 천국이 따로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당장 2400만원 정도의 보증금을 마련하지 못해 20여명이 길거리로 다시 나가 구걸과 노숙을 해야 할 상황이다. 가슴이 아프지만 뾰족한 수가 없어 모두가 실의에 잠겨 있다.

물론 우리도 다른 빈집을 물색할 것이고, 급하면 공터에 비닐이라도 치고 잠자리를 만들 것이다. 더불어 사는 집에 들어올 때 했던, 다시는 노숙이나 구걸을 안 하겠다는 맹세는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권 차원에서 지켜져야 한다. 이런 이들의 기본권이 보장되는 사회가 될 때 우리는 문명과 인격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사는 사회, 희망을 만드는 사회라야 살아가는 기쁨과 아름다움이 솟아난다.

양연수/‘더불어 사는 집’ 이사장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