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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2.16 17:55 수정 : 2006.02.16 17:55

왜냐면

새로운 지구화를 위한 전략은 몇몇 국가와 몇몇 사람에 의해서가 아닌 모든 나라들과 모든 민중에 의해서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다.

미국 국방성은 국방전략 보고서에서 ‘폭력적 과격주의자’란 첫째는 “사람들이 생활 방식과 사회 구성 방식을 선택할 권리를 원칙적·실천적으로 반대하는 이들”이고, 둘째는 “과격한 이념적 목표를 진전시키기 위해 보통 사람의 살해를 지원하는 이들”이라고 정의하였다. 이슬람 과격주의자들과 이란·북한·미얀마 등의 (미국의 말을 잘 듣지 않아서) 불량한 나라가 이에 해당 한다고 말한다. 맞다. 이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미국 정권이 분류한 기준으로 볼 때도 이들은 폭력적 과격주의자가 맞다. 하지만 이들뿐일까? 지구상에 폭력적 과격주의자가 이들뿐일까?

미국과 서방 선진국들 또한 그로부터 자유스러울 수 없다. 아르헨티나(아옌데)와 파라과이 등의 여러 남미 나라는 그 사회의 구성원이 원하는 지도자와 시스템을 가질 수 없었다. 왜! 바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선진국들이 자신들에게 호의적인 정권을 세우기 위해 반정권 군부를 전폭적으로 지원했기 때문이다. 최근 와서도 미국은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당선된 산유국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권을 무너뜨리려는 쿠데타 기도를 끊임없이 뒷받침하고 있지 않은가.

중동 쪽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얼마 전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무장단체인 하마스가 승리하여 그 정부를 구성하자 이스라엘의 뒤를 봐주는 미국 등 서방 선진국들은 하마스 정권을 축출하겠다고 은근히 공언하고 있다. 경제적 수단으로 압박하여 기필코 그 정권을 무너뜨리고야 말겠다는 것이다. 말이 경제적 수단이지 그로써 야기 될 의료 및 식료품의 부족은 결국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삶을 피폐하게 할 것이며, 이런 폭력적 상황은 걸프전 이후의 이라크가 어떠했는지를 통해 확인된다. 곧, 미국식 자본주의 깃발을 세계에 꽂겠다는 목적에서 미필적인 고의로 살인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이러한 것을 두고 부시는 항상 새로운 미래를 위한 값진 희생이라고 지껄이지만, 희생이라는 것은 스스로의 선택에 기대는 것이지 누가 쥐어주는 것이 결코 아님을 분명히해 두고 싶다. 팔레스타인이 무장투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차치하더라도 이건 오만불손의 극치다. 팔레스타인 민중들이 민주적인 절차와 축제 분위기 속에서 성공적으로 치른 선거의 결과이지만 미국 등의 마음에 들지 않으므로 해당 사회 구성원의 의견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독단으로밖에는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국방성이 밝힌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폭력적 과격주의자’란 바로 본인들이다. 미 정권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생활 방식과 사회 구성 방식을 선택할 권리를 원칙적·실천적으로 반대하는 이들”이며, “(그들이 강력히 밀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라는) 과격한 이념적 목표를 진전시키기 위해 (팔레스타인) 보통 사람의 살해를 지원하는 이들”이다. 새로운 지구화를 위한 전략은-희망의 형성과정이 그러하듯이-몇몇 국가와 몇몇 사람에 의해서가 아닌 모든 나라들과 모든 민중에 의해서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실천과 따뜻함도 담보되는 것이다. 미국뿐 아니라 그의 우방국 중 하나인 한국도 이 점을 깊이 새겨 운신의 폭을 결정하기 바란다.

평화로운 삶을 향한 인류의 수레바퀴는 저절로 굴러가지 않는다. 평화를 사랑하기에 불의에 저항할 줄 아는 양심이 필요하다.


박이용준/초등학교 예비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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